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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봄날아침편지269

2025.1.12 신경림 <가난한 사랑노래>

by 박모니카

삶의 마지막순간에 누군가 한사람만 있었더라면... 분명 다시 살 희망이 있었을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어제 하루를 지배했습니다. 흰 눈 내리는 월명산 새벽산책길을 돌아서 마지막 정점으로 빙판이 된 호수의 풍경을 몇 장 찍었지요. 왠지 단단하게 얼은 듯한 호수 표면위로 갖가지 즐거운 추억이 스치고, 물과 뭍의 경계를 찾으며 지인들께 풍경사진으로 굿모닝 인사를 했었죠.


바로 그때 십 수명의 119구조대원과 경찰들이 달려오면서 하는 말, ’사람이 죽었어요.‘ 먼 곳도 아니고, 사진풍경속에 들어온 바로 앞 호수벤취로 사람들이 몰렸어요. 곧 이어 검은 형체가 하얀 눈 위에 눕혀지고, 산책나온 사람들은 저마다 걱정과 측은한 마음을 토해냈답니다.

사인(死因)은 설왕설래... 저는 잠시 죽은 자의 영혼을 위해 묵도의 시간을 가졌답니다. 너무 미안해서요. 100미터도 안되는 거리에서 누군가의 풍경은 죽음속에 있었는데, 누군가의 풍경은 삶을 즐겼던 맘에 정말 고인에게 미안했거든요.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말했죠. 죽을 힘으로 살아야지... 라고요. 어느새, 밝은 기운이 아침을 물들이며 호수도 깨어나고, 사람들의 잠자던 내성도 깨어나면서 저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혹시 어제라도 다시 ’윤‘에 대한 체포영장이 있을까 싶어, 동조하는 맘을 보태려 했었는데, 이런저런 감정들을 다 접고 전주의 모 서점에 가서 한동안 있었습니다.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을 한 장 두 장 펼쳐보는 것으로 맘 속의 소요를 다독거리며, 명색이 책방주인인 제가 다른 서점공간에서 위로를 얻었답니다.

매일 매순간 목도하는 삶의 가치를 타인의 죽음을 통해서 알아야만 한다면... 너무 늦은 일이 되겠지요. 삶과 죽음이 분리된 것이 아니고, 손바닥의 등과 속인 것처럼 한 몸 임을 기억한다면, 이 세상 어떤 일에도 분노와 원망, 욕심이 사라질거예요. 며칠전 고1학생들과 영어강독수업 중에 가치로운 것에 대한 표현이 나와서 물었죠.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이라고요. 한 학생이 답하길...’살아있는 거요‘라고 한 그를 최고라고 치켜세웠답니다.


다시한번 오늘 이순간, 살아있음에 고맙다는 기도를 올립니다. 또한 아픔으로 슬픔과 고통에 빠진 모든 이들, 또 생면부지의 모든 영혼들까지도,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오늘의 논어구절은 子曰:「未知生,焉知死?」 - 삶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리요. (선진 12장) -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지 말고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라 라는 뜻이겠지요. 신경림시인의 <가난한 사랑노래>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가난한 사랑 노래 - 신경림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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