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6 이영식 <모란시장에서>
“노령연금 타서 나왔는디, 왜 이렇게 돈이 시프다요. 갈수록 물가만 높고 클났소. 그러니 병치(병어의 사투리) 한 마리 더 올려주소.”
“어메, 한 바구리 더 사면 두 마리 올려드릴께, 조금 더 쓰시오.”
친정엄마와 생선장수 아저씨는 서로 설날 덕담을 주고 받으며 싱싱한 병치 한 마리를 놓고 새벽시장의 날을 밝혔습니다. 7시가 넘어야 날이 밝어도 새벽시장은 말 그대로 새벽부터 부산스러웠지요. 새벽마다 열리는 시장통 사람들의 시끌벅적한 소리가 그리워 친정엄마의 설음식 준비에 따라나섰는데요. 평생 어부마님으로 사신 엄마의 입맛 일번지는 언제나 생선에 머뭅니다. 유전자를 지닌 저도 마찬가지로 생선음식이 가장 좋습니다. 특히 채소와 곁들이는 생선회나 생선탕음식은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가 않지요. 생선장사 아저씨의 밝은 미소가 착해보여서, 한 마리 덜 받고 기분좋게 어서 사자고 엄마를 졸랐지요. 집으로 돌아와 엄마는 병치 세 마리를 듬성듬성 썰어 초고추장과 내밀었습니다. 두 모녀가 아침식사로 먹은 병치회는 그야말로 최고의 맛, 싱싱한 새벽산소를 온전히 다 먹는 듯 했답니다.
이렇게 명절이라도 있으니, 사람사는 맛이 납니다. 일부러 사람들과 살짝 부딫혀보기도 하고, ‘어머 죄송해요’라고 말하면 ‘아고 괜찮혀요’라는 답하는 소리가 아름다웠습니다. 노점에 놓여있는 여러 먹거리들을 사진 찍으며, 주인장에게 포즈를 요청하기도 했구요. 저는 명절이 참 좋습니다. 어릴때부터 그랬던거 같아요. 큰딸이라서 유독 할 일이 많았건만, 한번도 짜증을 낸기억이 없어요. 하긴 워낙 엄한 엄마 덕분에?? 그랬을까요~~ 하여튼 가족들과 조상들을 위해 준비하는 음식차림부터, 지인들에게 소소한 선물을 드리는 일, 함께 식사하며 인사하는 일 등... 부산스러워 보일 것 같은 모든 일에서 사람냄새를 맡습니다. 그래서 행복하지요. 사람이 보고 싶을때는 일부러라도 새벽시장에 한번 마실 가보세요. 아마도 하루를 싱싱하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에너지가 생길거예요.
오늘의 논어구절은 공자의 바램을 담은 ‘노자안지(老者安之), 붕우신지(朋友信之), 소자회지(少者懷之) - 노인을 편안하게 해드리고 , 벗에게는 미덥게 하고 젊은이는 감싸주고 싶다. 공야장 26 –입니다.
이영식시인의 <모란시장에서>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모란시장에서 - 이영식
몸과 마음 쑤시는 날
詩를 덮고 모란시장에 가네
찰찰 넘치는 생의 비린내 속
황구처럼 어슬렁거리다가
오일장 한 구석
푸성귀 더미 위에 부려진
내 그림자를 바라보네
바람에 쓸려 헐렁해진 하루도
파릇파릇 봄 잔치에 섞이니
장딴지에 슬며시 물이 오르고
겨드랑이가 간지럽네
알타리무, 돌미나리
좌판을 벌린 노파의 손등에
파종하듯 뿌려지는 햇살
검버섯 돋은 세월의 강 건너
염소를 몰고 장닭을 몰고
지상의 낮은 사랑을 몰고 오네
오백 량이오, 천 량이오
변방의 수수 많은 소리들이
서로 뿌리를 대고 힘을 보태는
저 구릿빛 건강한 외침이
등 푸른 삶의 싹을 틔우는가
罷場,
모란 잎 같던 꿈을 접는 어깨 위로
고추씨만한 풋별이 뜨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