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8 오탁번<겨울강>
설날을 맞이하듯 대설이 예보되고 강추위가 몰아치니 귀향행렬에 발걸음이 이만 저만 무거운 게 아니겠다 싶어요. 삼동에 추위도 없다고 한 마디 했더니, ’정신차려라 이친구야‘ 호령하듯 설날 연휴기간 내내 강설(强雪)이 내린다고 합니다. 금주간을 포함하여 열흘간이나 공식 휴일이니, 따뜻한 나라로 떠나는 철새들처럼, 공항여행인파 역시 장난아니게 몰렸더군요. 어쨌든 저도 어제까지 수업, 설 연휴가 시작되었습니다.
1월에 빈 수업공간이 너무 많다고 학부모들께 설날 연휴인데도 학원수업하겠다고 공지, 어제 마지막 시간 중등부학생들은 전원 출석. 기분이 좋아서, 세배하면 세뱃돈 주마 했더니, 수업후 제게 몰려왔습니다. 코로나 전까지는 설날이 오면 학생들에게 일부러 인사시키기도 했는데요. 저도 그 사이 건망증이 심해졌는지, 아님 귀찮아졌는지... 그냥 지나가다가, 어제는 문득 학생들에게 설날인사를 받고 싶더군요. 엎드리는 세배는 아닐지라도 학원샘들께도 인사드리고 저한테 오라고 했지요. 영어로 새해인사 한마디씩 준비해서요.
어떤 학생왈 “원장님, Be healthy and happy new year”에 이어 각자 다른 표현으로 세해인사를 받고, 기념으로 빳빳한 신권(천원권) 두장씩 주었습니다. 돈 가치로 따지면 수퍼 브라브콘 아이스크림 한 개 값이겠지만, 학생들에게 예(禮)를 가르친다는 제 마음에 풍선이 달렸었답니다. 며칠전 중고등부에게 성적장학금으로 거금이 나갔지만 혹시나 어제의 저를 두고 짠돌이라고 하진 않을지 쬐끔 마음이 쓰이네요^^
새벽에 눈을 떠서 혹시나 폭설인가 싶어 집앞을 보니 그 정도는 아니군요. 폭설하면 오탁번 시인의 <폭설>이라는 매우 코믹한 시가 떠오르는데, 한 번 읽어보고 웃었습니다. 오늘은 다른 시 <겨울강>을 들려드리고 싶고요. 오늘의 논어구절은 ’조이불강 익불석숙(釣而不綱 弋不射宿)‘ - 공자께서는 낚시질은 하시되 큰 그물질은 하지 않으시며, 주살질은 하시되 잠자는 새를 쏘아 잡지는 않으셨다. 술이편26장. 봄날의산책 모니카.
겨울강 - 오탁번
겨울강 얼음 풀리며 토해내는 울음 가까이
잊혀진 기억 떠오르듯 갈대잎 바람에 쓸리고
얼음 밑에 허리 숨긴 하양 나룻배 한 척이
꿈꾸는 겨울 홍천강 노을빛 아래 호젓하네
쥐불 연기 마주 보며 강촌에서 한참 달려와
겨울과 봄 사이 꿈길 마냥 자욱져 있는
얼음짱 깨지는 소리 들으며 강을 건너면
겨울나무 지피는 눈망울이 눈에 밟히네
갈대잎 흔드는 바람 사이로 봄기운 일고
오대산 산그리매 산매미 날개빛으로 흘러와
겨우내 얼음 속에 가는 눈썹 숨기고 잠든
아련한 추억이 버들개지 따라 실눈을 뜨네
슬픔은 슬픔끼리 풀려 반짝이는 여울 이루고
기쁨은 기쁨끼리 만나 출렁이는 물결이 되어
이제야 닻 올리며 추운 몸뚱아리 꿈틀대는
겨울강 해빙의 울음소리가 강마을을 흔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