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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봄날아침편지286

2025.1.29 백무산 <설날 아침에>

by 박모니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글로나마 세배합니다. 올겨울은 눈이 내리지 않아 겨울가뭄이라는 말까지 있더니,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설날 아침 흰 눈이 쌓인 설경과 먼저 마주합니다. 물론 귀향길 크고 작은 많은 어려움과 사고들도 뉴스로 나오지만, 그냥 어린애처럼 눈 덮인 설날아침, 집집마다 어른들께 세배하기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돌아가봅니다. 아마 이런 마음도 인간의 본능이 아닐까요. 갈수록 어린이도 어른도 줄어드는 현실이 안타깝지만요...


어제는 친정집 부침개를 하는 자리에서 조금 수다를 떨다가, 눈 오는 거리를 제법 걸었습니다. 엄마집에서 학원까지의 거리가, 걸어서 1시간. 걷기에 딱 좋은 거리이지만, 중간 중간 눈이 퍼부어서 혹시라도 지인들이 저를 보았다면, ’왠 청승인가‘ 싶어보였을거예요. 그런데도 그냥 걷고 싶더군요. 걸으면서 눈발도 맞고 바람도 맞고 세월도 맞고 또 한 살 먹는 내면의 제 자신도 맞고요. 호되지 않을만큼의 걷기산책은 마음의 양식이 되었답니다.


떡국을 포함해서 조상님과 후손들을 위해 한 상 걸게 차려놓으실 엄마집으로 떡국먹으러 갑니다. 무엇보다 학생인 조카들에게 세배도 받고 세배돈도 줄 시간이 기다려지네요. 어느새 시댁의 조카들은 성인이 되어버려서 금전적 지출은 많이 줄었지만, 북적거리던 시골집 대청마루를 생각하면 말 그대로 ’그 옛날의 추억‘이 그리워집니다. 한용운선생은 ’그리운 것은 모두다 사랑이요 님‘이라고 했다지요. 오늘은 당신께서도 사랑하는 님을 많이 만나시길 바랍니다. 논어구절 애기례(愛其禮) -예를 사랑한다면 돈에 연연하지 마라, 팔일장17 –입니다. 백무산 시인이 들려드리는 <설날 아침에>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설날 아침에 – 백무산

그믐날까지 연 사흘 눈 내리더니

설날 아침엔 개었다가 흐리다

지붕마다 눈 녹아 처마에 고드름 달고

빈 무밭에 까막까치

깜장 발자국 찍어댄다

새벽 어둑서니에 마당 쓰는 소리 잠을 깨우고

집집이 못 보던 신발들, 섬돌이 좁다

어느 찢어질 가난인들 섬길 이 없을까

아랫사람 만나서도 옷깃 여민다

아재 아인교, 고샅길에서

이기 누고 당산 앞에서

욕봤데이, 그래 객지서 욕봤데이

뒷산도 눈을 털고 그래그래

앞강도 뽀얀 얼굴로 오냐오냐


예전엔 내가 저 풍경 속에 있더니

언제부턴가 풍경을 벗어났네

아무래도 나는 다시 저 풍경으로 가려네

내가 담긴 풍경을 내가 보고 살 궁리 하나

설날 아침에 작정을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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