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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봄날아침편지300

2025.2.12 고은 <대 보름날>

by 박모니카

새벽비내리는 정월대보름일. 한자어로는 ‘상원(上元)’이라 하며 우리 세시풍속에서는 설날만큼 중요한 날입니다. 농경문화였던 우리나라에서는 달의 여신은 풍요와 다산을 의미했기에 달을 바라보는 선조들의 눈은 분명 지금과는 매우 달랐었겠지요. 특히 정월에 떠오르는 보름달을 대보름달이라 칭할만큼 이 날에 한 해의 대운을 점치며 나눴을 수 많은 민속행위들이 그립습니다. 그 중 하나, 보름날이 밝아야 운수가 좋다하여 집안 곳곳 밤새도록 등잔불을 켜놓고 밤을 세웠던 일을 저도 어린시절 많이 보았습니다. 오늘밤에 혹시나 밝은 빛이 창문을 두드리면 급히 일어나 환대할지어다...^^


무슨 행사든 전야제가 볼만하지요. 중동당산제에 가서 마을의 어른들이 주관하는 제(祭)를 보고 음복을 나눴는데요, 특히 성산에서 온 굿거리사당의 풍물놀이가 흥겨웠습니다. 저도 소시적(??) 4년동안이나 풍물채 따라다닌 적이 있었거든요. 이제 두 손은 궁채를 들 감각도 없지만 신기하게 흥은 남아서 발장단이 저절로 움직였답니다.


점심에 초대받은 일명 ‘정월대보름밥 나눔잔치’. 한 문우의 수고로움으로 십여명 입과 배가 보름달도 질투할만큼 둥그러졌습니다. 아무리 음식솜씨가 좋다고 해도, 밥을 나누는 마음과 어찌 비교할수 있으리오. 붉은 찰밥에 곰탕 국물과 갓 구운 김, 나물들, 그리고 햇김치 등, 10여가지의 반찬이 올려진 밥상을 대접받았네요. 게다가 제 엄마, 남편이 드실 몫까지 챙겨주시는 그녀의 두 손에 무엇을 올려드려야 할지.... 참말로 고마운 마음과 함께 즐거운 고민 하나 늘었습니다.~~


학원생들에게는 보름밥 대신 간단한 간식(땅콩, 호두, 김 등)으로 보름날을 설명해주어야겠어요. 저도 어제밤 스쳐간 보름달을 오늘 밤에 꼭 볼수 있도록 두손을 모으고요. 혹시나 마음이 혹하면 귀밝이 술 한잔 마시며 한 해동안 좋은 말만 잘 헤아려 듣도록 특효약투여를 할까 생각도 해봅니다. 오늘의 논어구절은 ‘성상근(性相近) 습상원(習相遠)’-인간의 본성은 서로 가깝지만, 습관으로 인해 멀어진다. 양화편 –입니다.

고은시인의 <대 보름날>입니다. 봄날의산책 모니카.


대 보름날 – 고은


정월 대보름날 단단히 추운 날

식전부터 바쁜 아낙네

밥손님 올 줄 알고

미리 오곡밥

질경이나물 한 가지

사립짝 언저리 확 위에 내다 놓는다

이윽고 환갑 거지 회오리처럼 나타나

한바탕 타령 늘어놓으려 하다가

오곡밥 넣어가지고 그냥 간다

삼백예순 날 오늘만 하여라 동냥자루 불룩하구나

한바퀴 썩 돌고 동구 밖 나가는 판에

다른 거지 만나니

그네들끼리 무던히도 반갑구나

이 동네 갈 것 없네 돌았네

자 우리도 개보름 쇠세 하더니

마른 삭정이 꺾어다 불 놓고

그 불에 몸 녹이며

이 집 저 집 밥덩어리 꺼내 먹으며

두 거지 밥 한 입 가득히 웃다가 목메인다

어느새 까치 동무들 알고 와서 그 부근 얼정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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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정월대보름3.jpg 문우 이순화시인의 보름밥...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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