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2.15 장희수<사력>
훌쩍 하늘높이 뜀뛰기한 기온덕분에 새벽이 참으로 부드러워요. 피아노 선율을 깔아놓고 글을 쓰자니, 왠지 깊고 아늑한 챔버안에 들어온 듯 하네요. 입춘이라 해놓고 대설에 폭설을 뿌리던 때가 기껏해야 일주일 전인데 마치 아주 오래전 꿈속이었던 듯, 그렇게 시간의 물결이 흘러가는군요. 그때 모아두었던 생명수로 이제 정말 땅 속에서는 부지런히 생명체들이 얼굴 드러낼 준비로 바쁠거예요. 가만히 귀를 대어보면 소리가 들리니까요^^
요즘 제가 만났던 젊은 청년들은 어쩜 그렇게 사랑스러운지... 응원봉을 들고 나라의 주인으로 나선 청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어제 책방에 와서 시를 필사하는 청년들의 모임을 보고 정말 대견했어요. 날씨 만큼이나 밝고 사랑스러웠지요. 게다가 어느 청년은 마을 이야기가 담긴 책이 있냐고 물어서, 부끄럽지만 제가 쓴 책을 권하니, 마을 어머님들 이야기와 시가 있어서 좋다고 했지요.
그 와중에 저도 벗과 함께 문화생활?을 했는데요. 이당미술관에 전시된 지역화가들의 그림을 보러갔어요. 그림에는 완전 무재능이지만 누가 어떻게 무엇을 그렸는지를 보며 대화나누는 것 만으로도 즐겁지요. 꼭 유별스런 용어로 평을 나눠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특히 어제 전시된 그림의 주제는 <예술과 치유>라는 제목으로 ’균열을 메우는 빛으로 치유의 순간들을 포착하는 그림들이 전시되었다고 써 있었어요.
25명의 지역작가들 작품 중에 제가 알고 있는 이름들의 작가작품은 유독 반가워서 작품을 구경 중이라는 인증사진으로 오랜만에 안부도 주고 받았습니다. 채영숙작가의<하제 팽나무>, 유기종 작가의 <Seed- 나누다>김진아작가의 <생태계>, 류인하 작가의 <기다리다>, 남민이 작가의 <magic hour>, 박지수 작가의 <Two hands> 와 고보연 작가의 <정희의 일기> 등.
기온이 포근할것으로 예상되는 주말, 이랑전시관(카페병행)에 가셔서 힐링한번 해보시길 추천합니다. 저도 오랜만에 서울구경하러 올라가요. 오늘의 논어구절, 志於道 據於德 依於仁 遊於藝(지어도 거어덕 의어인 유어예) - 도에 뜻을 두고 덕에 근거하며 인에 의지하고 기예에서 노닌다, 술이편 – 2025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당선작, 장희수 시인의 <사력>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사력 – 장희수
할머니가 없는
할머니 집에선
손에서 놓친 휴지가 바닥을 돌돌 굴렀다
무언가 멀어져가는 모습은
이렇게 생겼다는 듯
소금밭처럼 하얗게 펼쳐지고
어떤 마음은 짠맛을 욱여가며 삼키는 일 같았다 그중 가장 영양가 없는 것은
포기하고 싶은 마음일 것이라 생각해본 적 있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포기할 수 있었다면
또다시 포기하고 싶은 마음 같은 건, 생길 리 없을 테니까
할머니도 이제야 뭔들
관두는 법을 배운 거겠지
다 풀린 휴지를 주섬주섬 되감아보면 휴지 한 칸도 아껴 쓰라던 목소리가,
귓등에서 자꾸만 쏟아지는 것 같았는데
쏟아지면 쏟아지는 것들을 줍느라
자주 허리가 굽던 사람의 말은
더 돌아오지 않는 거지
죽을힘을 다해본다 해도
사람들은
영정 앞으로 다가와
국화꽃을 떨어트리고 멀어져 간다
정갈하고 하얗게 펼쳐지는
꽃밭처럼,
무언가 떠나는 모습은 이렇게 생겼다는 듯
할머니가 있었던
할머니의 집에서는
<참고, 작품에 대한 제목과 설명은 도록에 자세히 나와 있어요... 꼭 가보세요^^> 이당전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