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2.18 김은경 <엄마꽃>
절기(節氣)에 따라 시간의 흐름을 읽어보는 일은 재밌지요. 봄으로 들어선다는 입춘에 이어 두 번째 절기 ‘우수(雨水)’ 날인데요, 눈이 녹아서 비가 된다는 말이 들어있으니, 이제 추운 겨울이 가고 진짜 봄을 맞는다는 날입니다. 오늘이 한 계절의 끝과 시작이 맞물려 있는 시간이지요. 어제는 꽃샘추위처럼 바람이 차고 셌지만 그래도 봄기운이 돌면서 초목에 슬슬 싹이 트고 있을거예요.
어제 새벽엔 갑자기 친정엄마께서 생선횟감이 드시고 싶다고... 새벽시장에 가서 싱싱하고 맑은 연푸른 빛의 병어를 사서 회를 드셨습니다. 물론 저도 초고추장에 병어회를 정말 맛나게 먹었습니다. 사위사랑은 장모라는 말처럼, 생선을 다듬어 따로 챙겨주셔서 남편도 잘 먹었지요. 새벽시장을 가면 ‘마수걸이’라는 말을 종종 듣는데요, 특히 저의 엄마는 함께 늙어가며 평생 장사하시는 분들의 얼굴을 많이 알고 계시는 터라, 안사도 될 물건까지 사 주십니다. “내가 마수걸이 해주면 하루종일 복이 있을것이네” 라면서요. 아마 제가 엄마의 그런 품성을 닮아서 시장만 가면 안써도 되는 돈까지 다 쓰고 오나봅니다.^^
주말에 후배의 첫 시집을 받았는데요, 수업 쉬는 시간마다 한편씩 시를 읽었어요. 참으로 속사랑이 넘치는 후배구나 생각했지요. 남편, 어머니, 다른 타인을 바라보는 그녀의 사랑과 연민어린 눈망울은 늘 젖어있을 수밖에 없을 거예요. 하지만 그녀의 젖은 눈가에는 호탕한 웃음도 잃지 않았더군요. 이제 지천명의 무대에 서 있는 그녀가 ‘영겁’이란 시어를 자주 쓴 것에 얼핏 가벼운 웃음이 나왔지만,,, 어디 물리적인 나이만으로 한 사람의 시간을 다 측정할 수 있을까요. 분명 ‘무시무종’한 어느 아픔의 세월이 그녀에게도 있었을거라 생각했답니다.
그녀의 이름은 김은경시인입니다. 시집처럼 핑크빛이 잘 어울리고 누구보다도 봄을 불러오는데 막힘이 없을 시인이지요. 시집 <흔들리지 않을 상처를 위하여>, 꼭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시집의 4부 ‘엄마가만이사랑한다’에 나오는 <엄마꽃>을 들려드려요. 논어구절은 ‘父母唯其疾之憂(부모유기질지우) - 부모는 오직 자식이 병들지나 않을까 그것만을 걱정한다, 위정편 –입니다.
엄마꽃 – 김은경
“시간 되면 잠깐이라도 댕겨가라
니, 에미 계속 살 것 같아도
언제 불러갈지 모르니께
쌀도 떨어져 갈 때 되었겄는디 ”
“항시 밥은 먹고 다니냐
항시 운전 조심하고
항시 최 서방한테 웃는 낮꽃으로 잘하고”
“우리 딸 엄마가 사랑한다”
전화 끊기 전 잊지 않고 마음 도장 꾸욱
한 줄 더 덧붙이시는 날은 다리가 덜 아프신 날이다
"엄마 딸로 태어나 줘서 고맙다“
나처럼 활짝 웃는 수국 화분 갖다 왔으니
큰딸이다 생각하고
이야기 하고
물 주고
예뻐해 줘
”넌 어찌 내 맘을 그리도 잘 아냐"
꽂만 바라보며 눈물 훔쳐내는 엄마를 두고 집으로 있다
늦은 밤 걸려 온 엄마 전화
"위메 전깃불 안 켜도 쓰겄다
어쩜 요렇게도 꽃이 환하다나
느그 아부지랑 잠이 안 와 꽃만 보고 있다"
며칠 있다 한 번 더 다녀와야겠다
지지 않는 엄마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