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3.4 오길원 <꽃샘추위>
요즈음 군산을 떠나 본적이 없네요. 그래서인지 맘 속에 다소의 걱정과 염려의 지꺼기가 쌓여가고 있는 듯, 지난 밤엔 꿈 속에서 딴 세상을 기웃거리다가 놀라는 소리에 남편이 달려왔답니다. 아마도 오늘 새학기 첫 날이라 할 일이 가득 쌓여 있는 머릿속, 미리감치 불안의 신호가 흐르고 있었나봐요. 그래도 일어났으니 또 시작하는 오늘!!
엔트로피 법칙은 ’자연은 무질서한 방향으로 흐른다‘이죠. 그런데도 지나와 어느 한 순간을 되돌아보면 무질서한 것이 없는 규칙세상처럼 보이지요. 언제나 현재만이 가장 무질서하고 그래서 가장 두렵고, 동시에 가장 궁금하게 만드는 새로운 원자, 분자들의 세상입니다.
갑자기 보이는 손등위에 불거져 나오는 파란 힘줄. 이 마저도 ’어느새 이런 노화가...‘라는 절망의 한숨을 토해낼만큼 무질서하게 흐르고 있네요. 노화란 몸에 있던 견고하고 균일된 요소들이 점점 사라지는 과정, 엔트로피 법칙을 가장 잘 보여주는 모습인데요, 주름이 생겨 얼굴의 피부가 내려앉고, 뼈에 시린 바람이 느껴지는 신호들 모두가 이 규칙의 수행자들입니다. 동거해야 할 낯선 손님들...
할 일도 많은 오늘따라, 진짜 멀리 여행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아침출발에 무거운 추가 하나 달렸습니다. 이렇게라도 글 수다를 떨면서 가벼워지는 연습을 하는 중이랍니다. 일체의 글자들과 말소리들을 배제하고 오로지 단선의 음악하나만 켜놓고요. 월요일같은 화요일, 기온이 뚝 떨어져, 방벽에 스미는 공기마저 화사한 봄 바람을 기다리는 학기 첫날... 저도 만나는 학생들로 체온을 높여볼까 하네요. 오길원시인의 <꽃샘추위>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꽃샘추위 – 오길원
봄이 오는 길목은
둘이서 걷기에는 좁다란 길이어서
양보 없는 바람의 자리다툼에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안하무인 겨울바람은
해가 저문 데도 떠날 줄을 모르고
철부지 봄바람은
햇살을 등에 업고 의기양양이다
손잡고 꽃구경 가자는
봄바람의 야릇하고 달콤한 속삭임에도
발걸음이 무거운 겨울바람은
코웃음 치며 냉랭하다
아직 때가 아니라고
꽃들도 필 때가 따로 있는 거라고
봄을 그리워 할 때 핀다고
고난 속에 핀 꽃이 더 향기롭다는
봄바람의 어긋난 사랑인가
궁지에 내몰린 겨울바람의 몽니인가
꽃을 시샘하는 얄굿은 바람의 장난에
봄이 왔어도 봄이라 말 못하고
핀 꽃이 서러워 운다
사진,지인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