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3.5 백석 <이른 봄>
서울의 집회현장에 가면 가장 인상적인 풍경은 깃발입니다. 특히 젊은 청년들은 언뜻 보기엔 극히 사적인 문구가 써진 깃발을 들고 현장에 나오는데요, 왠지 이런 깃발들 서너개만 모여도 공공성, 대중성을 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했지요. 그때 이런 생각을 했었어요. ’만약 내가 깃발을 써서 나온다면, 어떤 문구로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 잡을까.‘
어제 아침 일찍 책방을 찾은 한 손님은 저와 결이 같은 생각을 하는 분이었어요. 광주시민대학이라는 커뮤니티(community)에서 사람들의 활동을 보면서 인문학과 사회참여적인 프로그램들을 만나는데요, 이분도 이 곳에 참여하면서 저를 알게되고 제 책방이 무척 궁금하셨다네요. 하지만 일부러 전남 나주에서부터 ’책방한번 찾아가야지‘라는 생각을 실천에 옮기는 일은 쉽지 않기에 오신 분께 정말 감사했습니다.
저 보다 조금 어리신 이 분의 로망도 ’책방지기‘, 말랭이 마을 같은 작은 곳에 작은 책방을 꼭 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수줍으면서 경쾌한 웃음은 처음 본 사람의 긴장을 바로 무장해제 시키는 대단한 매력을 가졌구요, 부드러운 말투에 담긴 확고한 실천의식은 서울집회 동행하여, 깃발을 들고 싶은 동지애를 느끼게 했습니다. 깃발에는 이런 문구를 쓰고요. ’시골책방하고 싶은 오십대 중년들은 여기 모여라!!‘
그렇게 나주사람 한분이 제게 에너지를 주고 가더니, 바로 이어서 찾아온 핑크빛 후배는 더 큰 에너지를 내뿜으며 문학얘기를 나눴지요. 살짝 우울했던 어제 아침기운이 싹 몰려가고, 그들이 쏟아주고 간 사랑 덕분에 개학 첫날을 잘 보냈습니다. 사람의 기운이 엄청나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어제는 유독 그 파장의 길이가 무한대임을 새삼 더 느낀 하루였네요. 오늘은 3년 전 책방이 문을 열었던 날입니다. 만 삼년이면 무엇을 해도 기본틀이 세워진다 했으니, 앞으로 진짜 책방지기로 살아가는데, 흔들리지 않을 토대는 만들어져 있겠지요.
백석시인의 <이른 봄>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이른 봄 – 백석
골안에 이른 봄을 알린다 하지 말라
푸른 하늘에 비낀 실구름이여
눈 녹이는 큰길가 버들강아지여
들배나무 가지에 자지러진 양진이 소리여
골안엔 이미 이른 봄이 들었더라
산기술 부식토 끄는 곡괭이 날에
개울섶 참버들 찌는 낫자루에
양지족 밭에서 첫운전하는 뜨락또르 소리에
골안엔 그보다도 앞서 이른 봄이 들었더라
감자 정당 40톤, 아마 정당 3톤
관리위원회에 나붙은 생산 계획 숫자 위에
작물별 경지 분당 작업반장회의의
밤새도록 밝은 전등 불빛에
아, 그보다도 앞서 지난해 가을
알곡을 분배받던 기쁨 속에, 감사 속에
그때 그 가슴 치밀던 증산의 결의 속에도
붉은 마음들 붉게 핀 이골안에선
이른 봄으 드는 때를 가르기 어려웁더라
이 골안 사람들의 그 붉은 마음들은
언제나 이른 봄의 결의로, 긴장으로 일터에 나서다니
사진, 지인제공 - 보기 어려운 풍경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