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3.3 윤성택 <담장과 나무의 관계>
묵직한 습기를 머금은 공기풍선이 곧 터질 것 같은데 우리 복실이는 마치 손님을 기다리듯, 문 밖 계단위에 앉아 있으며 사람들의 눈길을 끌더군요. 간혹 같은 종족이 손님과 함께 오면 아예 그들을 따라나서고, 길가에 까지 따라 나왔다고 차 사고라도 날까봐 다시 왔다며 복실이는 데려다주고 가는 손님도 있었네요. 전생에 분명 좋은 인연이 있어 지금도 인연이 되었겠지요. 먼 산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저도 따라 그녀의 맘 속에 들어갔었죠. 이제보니, 사진이라도 한 컷 남겨둘걸, 코골며 자는 소리를 들으니 생각하네요.^^
오늘도 하루종일 비소식이 있군요. 책방매니저께서 화분의 겨울풀들을 깔끔히 정리해 주셨는데요, 그 속에서도 푸른싹들이 움트고 있더군요. 이번 비로 대차게 올라올 그들의 기운이 책방에도 전해질 것 같아요. 조만간 봄꽃 화분에 돈 좀 들여서 봄 맞이 단장을 해야겠어요. 슬슬 마을에도 사람들의 발걸음이 잦아지는 3월, 말랭이마을 봄날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우리 복실이랑, 벽화랑, 화사한 꽃이 기억에 남길 바라니까요.
집에 있으면 으당 주부 모드로 돌아가는지, 오랜만에 빨래돌리기, 그릇 정리하기, 몇가지 요리해놓기,,, 이런 일을 하다보면 왜 그리 평화로워지는지. 시간도 제 편이 되어 소리도 없이 고요히 흘러가는 강줄기가 되어주지요. 어느새 좁은 집안에 넓은 바다 같은 푸르름도 넘실거리데요. 저는 사기 그릇을 좋아하는데요, 오래전 후배가 준 선물, 물고기 문양의 그릇을 보며 그녀의 근황을 떠올리고, 글쓰기 영상 몇 편 듣다가 잠이 들었답니다.
아침부터 신학기 수업이 시작됩니다. 동료한분이 그만두어서 아마도 하루 7시간 이상의 수업을 할 듯, 나이들어서 예전 같이 날라다니며 수업은 못하겠지만 지난 며칠간 새로운 마음을 갈고 닦았으니, 잘 이겨내겠지요. 학생들도 새 학년 새 마음의 옷을 입고 공부하러 올테니까요. 오늘은 일찍 학원에 나가서 일등으로 청소부터 말끔히... 마지막 연휴, 봄비 들으며 당신 맘 속에서 꿈틀대는 씨앗자리 한번 둘러보시게요. 윤성택시인의 <담장과 나무의 관계>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담장과 나무의 관계 – 윤성택
담장 틈에서 나뭇가지는
가늘게 몸을 떨었다
아주 천천히 금이 자라도 좋았다
바람조차 알 수 없는 금의 방향은
담장의 천형이었다
상처를 제 안에 새기며 견디는
담장 곳곳 나무의 실뿌리가 번졌다
그 틈으로 수액처럼 물이 올랐고
바람 불 때마다 조금씩 혼들렸다
혹독한 겨울을 지나면서
나무는 말라가고 있었다
날이 풀리자 기어이 담장은
금 밖으로 무너져내렸다
나무가 활짝 몸을 열었다
검은 금들이 가지로 뻗어올랐다
사진, 지인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