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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봄날아침편지344

2025.3.28 임송자 <잡아준다는 말>

by 박모니카


‘안 아퍼야는디...’라고 걱정하는 심지의 두께는 나이에 비례하나 봅니다. 나이들면서 수많은 세월, 아파보고 나아보고, 또 아파보고 덜 아물어지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타인과 등가교환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기고, 위로의 말이 축축한 연민이 되어 서로를 쓰다듬을 줄 아는 인연들. 시를 낭송하는 사람들의 모임방 대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 분들의 톡방 수다글들을 잘 들어보면서 듣는 이의 즐거움을 자처했지요.


가르치는 직업이라는 것도 내 말을 잘 전달하는 것이 첫째 인 듯 하지만, 사실은 잘 들어주는 일이 그 무엇보다 앞섭니다. 영어를 어떻게 공부시켜야 하느냐 고민하는 학부모 상담자들의 말을 듣다보면 항상 그들의 걱정과 하소연이 앞서 나오기에, 그들의 말을 충분히 들어주고 공감의 몸짓, 해결가능하다는 확신의 언사가 중요하지요.


우리 학생들의 의사표현이 거의 수동적인 교육현장을 보면서, 자기 목소리를 내도록 유도하는 일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다보니, 한 두명 자기의사를 밝히는 학생들은 때론 시끄럽고 수업을 방해하는 인물로 찍히곤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학생들이야말로 윤활유같은 역할을 한다고 칭찬해주지요. 만나면 서로 눈을 바라봐야 하는데, 모두 핸드폰만 보고, 혼자웃고, 혼자 외마디를 지르고, 혼자 찡그리고... 뭐든지 혼자 표현합니다.

아마 우리 어른들도 그 상황이 다르지 않은 경우가 많지요. 그래서 단체 톡방에서라도 글소리를 내는 것은 정말 다행스런 일입니다. 학생들의 개인생활을 다 알수 없어도, 아마 우리 학생들도 최소한 단체방 대화라도 하면 좋겠다, 너무 게임에만 몰두하지 않으면 좋겠다, 중간고사 오기 전, 산과 호수에 가서 꽃들하고 눈 맞춤이라도 하며 찾아온 봄을 핸폰으로 한번 잡아보기라도 하면 좋겠다... 등을 얘기했습니다. 사춘기를 전면 선포한 중학생들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 아침입니다. 임송자시인의 <잡아준다는 말>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잡아준다는 말 – 임송자


돼지등뼈를 사러 총각네 정육점에 들렀다

월계수 잎을 덤으로 넣어주며 비린내 잡으란다

고기가 지닌 익숙한 하나를 빼라는 것인데

내 몸에서 여자를 빼라는 소리로 들렸다

김포떡집을 지나 로또명당을 지나

그 말이 나를 따라다녔다

잡아준다는 것

없애거나 빼버린다거나 다 속엣것을 줄이라는 일인데

그 말보다는 다정하지 않은가

하루의 쓸쓸한 끝은 노을이 잡아주고

나무는 열매를 잡아주고

뿌리는 흙이 잡아주고

사람은 서로의 일생을 잡아주고

분쪽들도 어느 저녁을 잡아주는 지 눈매가 곱고

어둠이 얼마나 깊었는지 알아보려고

별들도 하늘을 꼭 잡고 걸어 나왔다.


<말랭이에도 다 피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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