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4.7 김사인 <풍경의 깊이>
-시 쓰기는제 할말을 위해 말을 잘 ’사용하는‘ 또는 ’부리는‘ 데 있지 않다고 말해왔다. 시 공부는 말과 마음을 잘 ’섬기는‘데에 있고 이 삶과 세계를 잘 받들어 치르는 데 있다고 말해왔다. 그러므로 종교와 과학과 시의 뿌리가 다르지 않으며, 시의 기술은 곧 사랑의 기술이요, 삶의 기술이라고 말해왔다.-
-생각컨대 쓰기뿐 아니라 읽기 역시 다르지 않아, 사랑이 투입되지 않으면 시는 읽힐 수 없다. 마치 전기를 투입하지 않으면 음반을 들을 수 없는 것처럼. 당언하자면 시 쓰기와 똑같은 무게로 시 읽기 역시 진검승부인 것이며, 시를 읽으려는 이라면 앞에 놓은 시의 겉이 ’진부한 서정시‘이건 ’생경한 전위시‘이건 다만 사랑의 절실성과 삶의 생생함 이란 더 깊은 준거 위에서 일이관지(一以貫之) 하고자 애쓰는 것이 마땅하다. -
이 두 문단의 글은 시인 김사인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금주에 있을 시인과의 북토크를 앞두고 그 분의 시와 말씀을 종종 읽어보고 있는데요, 어젠 이 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왜냐하면 요즘 제 지인들 중, 상당수가 시를 읽고 필사하고, 또 시 쓰기를 하고 계시기 때문이지요.
사랑을 투입시켜라... 그 사랑하는 마음을 잘 분배하여 어떤 시에게든지 일이관지하며 차별하지 말고 읽어보아라... 라는 말이겠지요. 이 부분에 있어서는 저도 양심이 찔끔 거리네요. 호불호가 강한 편이라 아침마다 '오늘의 편지시'로 선택하는 시 역시 지나친 사랑을 주는가 하면, 그림자도 얼씬 거리지 못하게 하는 시도 있었거든요. 오늘부터 이 점 만큼은 반성해야겠습니다.
오늘부터는 김사인 시인의 시를 연속해서 들려드릴까 하는데요, 제 속 뜻이 있겠지요.??^^ 행사날(4.10일, 목요일 오후 4시, 말랭이커뮤니티센터)에 문학지망생 뿐만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 속에 희노애락을 함께 체감하며 해소할 곳을 찾는 분들이 많이오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윤씨의 파면이 결정되면 온다고 했던 한 선배님말씀처럼, 파면이라는 말이 가장 위대한 ’시어(詩語)‘처럼 들리던 그 날의 감격을 잘 간직하신 분들이라면 시인과의 만남에 꼭 어울립니다. ’그를 만나 막걸리는 마시는 날은 더욱 운수 좋은 날이다’라고 말한 어느 화가의 말처럼, 제가 당일 말랭이 어머님들과 함께 막걸리와 파전을 준비합니다. 김사인시인의 <풍경의 깊이>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풍경의 깊이 – 김사인
바람 불고
키 낮은 풀들 파르르 떠는데
눈여겨보는 이 아무도 없다
그 가녀린 것들의 생의 한순간,
의 외로운 떨림들로 해서
우주의 저녁 한때가 비로서 저물어간다.
그 떨림의 이쪽에서 저쪽 사이, 이 순간의 처음과 끝 사이에는 무한히 늙은 옛날의 고요가, 아니면 아직 오지 않은 어느 시간에 속할 어린 고요가
보일 듯 말 듯 옅게 묻어 있는 것이며,
그 나른한 고요의 봄볕 속에서 나는
백년이나 이백년쯤
아니라면 석달 열흘쯤이라도 곤히 잠들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 석달이며 열흘이며 하는 이름만큼의 내 무한 곁으로 나비나 벌이나 별로 고울 것 없는 버러지들이 무심히 스쳐가기도 할 것인데,
그 덕에 나는 꿈결엔 듯
그 작은 목숨들의 더듬이나 날개나 앳된 다리에 실려 온 낮익은 냄새가
어느 생에선가 한결 깊어진 그대의 눈빛인 걸 알아보게 되리라 생각한다.
너도바람꽃
금괭이눈
히어리꽃
<사진제공, 지리산 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