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4.8 김사인 <아무도 모른다>
벚꽃잎 한송이를 들고 와서 ‘Hello, teacher. How are you. I’m fine. Thank you’를 말하며 학원의 분위기를 환하게 밝혀주는 중1, 유라. 초등생일 때부터 이 영어표현 이상의 문장들도 분명 알고 있으련만, 중학생이 되어 배운 첫 문장을 큰소리로 말하고 다니라고 했다는 선생님의 말을 잘 듣고, 심지어 꽃들에게도 이 말을 해주었다며 제게 수다를 떨었답니다. 아마도 순수한 이 순간들이 언젠가 유라의 삶을 감싸주며 힘들 때 위로가 되고 샘물이 되는 날이 될 것이기에, 정말 멋지다고 칭찬해주었답니다.
김사인 시인의 시 중 <아무도 모른다>에 대해 김헌수 시인은 이렇게 얘기 했군요.
-우리가 사는 삶의 진솔함이 묻어나는 그의 시. 마음의 웅숭거림을 깊이있게 잡아주는 그의 시편들이 나는 참 좋다. 현재를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디로 돌아갈 것인지를 물으며, 꼭 쥐고 놓고 싶지 않은 삶의 한 순간들, 우리를 키워낸 어른들과 순수했던 지난날을 성진 언어로 붙잡아 주는 시인이다.-
-그의 시에는 사물을 다르게 바라보는 일, 곁에 있는 것과 교감하며 사는 삶, 친근함이 전체를 감싸고 있다. 삶의 부단함을 곡진하게 보듬는 시인의 마음이 섬세한 시선과 단정한 시어로 울림을 주고 가난하지만 풍족해지는 방법을 말하고 있다. 주변의 모든 것에 대한 애정과 치장하지 않은 날 것의 이야기가 들어었다. 차분하면서도 결이 고운 시어, 눈물겨운 마음, 가녀린 것들을 품은 마음이 시집 도처에 출렁거린다.-
이번 북토크에서 함께 이야기 할 책 <김사인 함께 읽기, 이종민 엮음>에는 52명의 시인과 평론가들이 김사인 시인의 시, 수십 편을 두고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놓았습니다. 설혹 같은 시를 선택 했을지라도 들려주는 이의 일화가 다르니, 시의 맛 또한 다를 수밖에 없지요. <아무도 모른다>는 누가봐도 우리 말랭이 마을 사람들 이야기 같습니다. 아득히 먼 결핍의 시절이었을 지라도, 아름답고 따뜻했던 그 때를 떠올려주는 그의 시를 읽으며, 말랭이 어머님들께 한번 들려드려야겠다... 마음 먹었네요. 오늘은 김사인 시인의 시, <아무도 모른다>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아무도 모른다 – 김사인
나의 옛 흙들은 어디로 갔을까
땡볕 아래서도 촉촉하던 그 마당과 길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개울은, 따갑게 익던 자갈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앞산은, 밤이면 굴러다니던 도깨비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런닝구와 파자마 바람으로도 의젓하던 옛 동네어른들은 어디로 갔을까 누님들, 수국 같던 웃음 많던 나의 옛 누님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배고픔들은 어디로 갔을까 설익은 가지의 그 비린내는 어디로 갔을까 시름 많던 나의 옛 젊은 어머니는
나의 옛 형님들은, 그 딴딴한 장딴지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나의 옛 비석치기와 구슬치기는, 등줄기를 내려치던 빗자루는, 나의 옛 아버지의 힘센 팔뚝은, 고소해하던 옆집 가시내는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무덤들은, 흰머리 할미꽃과 사금파리 살림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봄날 저녁은 어디로 갔을까 키 큰 미루나무 아래 강아지풀들은, 낮은 굴뚝과 노곤하던 저녁연기는
나의 옛 캄캄한 골방은 어디로 갔을까 캄캄한 할아버지는, 캄캄한 기침소리와 캄캄한 고리짝은, 다 어디로 흩어졌을까
나의 옛 나는 어디로 갔을까, 고무신 밖으로 발등이 새카맣던 어린 나는 어느 거리를 떠돌다 흩어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