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4.9 김사인 <화양연화>
하룻밤사이에 만개한 벚꽃이 학원골목을 환히 밝힙니다. 인간세상에 다시 태어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화풍 지풍거치며 수많은 설움을 삼켜야 했을까요. 봄날 태어나는 만물은 늘 아슬아슬하기만 하지요. 태어나면서 받은 사랑의 순간을 지극히 묻어둘 시간도 없이 허허롭게 털털 털려버릴 준비까지 마치고 선보이니 말입니다. 그 속에서 김사인 시인의 <화양연화>를 읽었습니다.
-모든 좋은 시는 첫 줄에 사람을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이때의 떨어짐은 밀리거나 고꾸라져 떨어지는 상태가 아니다.두 발이 땅위에 붙은 채로 어떤 웅덩이나 절벽 없이, 한 자리에서 아래로 사라지듯, 떨어지는 일이다.어느 날 심장이 무릎 아래로 툭, 떨어져 버리듯이, 이 시의 첫 줄은 그 아득함에서 시작한다,- 라고 박연준시인은 <화양연화>에 대해 말했습니다.
박 시인의 말대로 ‘화양연화’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말하지요. 그런데 그 아름다움은 눈에 보이는 현재에서는 결코 다 볼 수 없나봐요. 누구나 인생의 봄날이 있고, 그 봄날이 몇 번을 지나가야, 그것도 산전 수전 다 겪은 후에라야 더 진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면 서러움이 얼마나 클지... 싶어요. 아마도 차디찬 하룻밤 어둠을 다 먹은 후 피어난 저 벚꽃잎만은 진짜 아름다움을 알고 있겠지요. 저는 단지 그 꽃잎 아래 서서 들리지 않는 광음을 듣고자 할 뿐입니다.
내일 김사인 시인을 초대해놓고 걱정이 선수칩니다. 혹여나 함께 얘기 나눌 사람이 적으면 어떻하나... 그런 실례를 저지르면 큰일인데... 등등 생각하다 보니 봄날의 산책길이 무거워졌습니다. 하지만 이내 맘을 돌려놓고, 다가올 즐거운 잔치를 위해, 자리를 축하해주실 분들에게 감사 인사드리며 행사진행을 확인했습니다. ‘걱정도 사서 했네‘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분명 오실 분들은 꼭 오시리라 믿고 있을께요.
중국의 유명관광지는 이백과 두보, 도연명, 소동파 등 수 많은 시인들이 쓴 시가 곳곳에 있고 사람들이 소리내어 시를 낭독한다 하지요. 제가 말랭이마을에 와서 꼭 하고 싶었던 일 중 으뜸은 마을 골목 곳곳에 시를 걸어두는 일, 마을 사람들이 시인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려면 자주자주 시인과 시를 만나야 한다고 늘 말해왔습니다. 그래서 마을 어머님들 몇 분도 더 관심을 갖고 오시겠다고 하셨나봐요. 하여튼 이번행사에 군산시민 많은 분들이 오셔서 함께 하시면 좋겠습니다. 김사인 시인의 <화양연화>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화양연화 – 김사인
모든 좋은 날들은 흘러가는 것 잃어버린 주홍 머리핀처럼 물러서는 저녁 바다처럼. 좋은 날들은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처럼 새나가지 덧없다는 말처럼 덧없이, 속절없다는 말처럼이나 속절없이. 수염은 희끗해지고 짓궂은 시간은 눈가에 내려앉아 잡아당기지. 어느덧 모든 유리창엔 먼지가 앉지 흐릿해지지. 어디서 끈을 놓친 것일까. 아무도 우리를 맞당겨주지 않지 어느 날부터. 누구도 빛나는 눈으로 바라봐주지 않지.
눈멀고 귀먹은 시간이 곧 오리니 겨울 숲처럼 더는 아무것도 애닯지 않은 시간이 다가오리니
잘 가렴 눈물겨운 날들아.
작은 우산 속 어깨를 겯고 꽃장화 탕탕 물장난 치며
슬픔 없는 나라로 너희는 가서
철모르는 오누인 듯 살아가리라.
아무도 모르게 살아가거라.
책방앞 풍경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