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4.6 한용운 <알수없어요>
Multi typed 과제를 놀놀하게 처리하는 저를 보면서 드디어 나에게도 내란의 겨울이 갔구나 싶었어요. 제가 무슨 애국지사도 아니건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은 경우가 많았거든요. 앨리엇이 4월을 두고 어떻게 말했든지간에 이제 우리에게 사월은 슬픔만 있는 것이 아닌 달이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푹잠을 자고 일어난 아침이 참 싱그럽고 마음이 절로 데워져 있네요.
평범한 일상으로의 복귀는 특별한 댓가를 치루고 돌아와야했지요. 특별히 자영업자들의 경우, 경제상황이 갈수록 악화일로였는데 작년연말 특수 성황을 기대했던 그들에게 몰아닫힌 한파가 해를 넘겼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소문에는 탄핵의 기쁨으로 자영업들의 주름살이 한 줄 사라지는 덕분에 성형외과 주름이 한 줄 늘었다는 우스개소리도 들리는 걸 보면 분명 새 세상이 온 줄 압니다.
어제 하루종일 내린 진짜봄비를 머금고 드디어 군산의 벚꽃들이 완연히 기재개 펴며 눈을 뜨고 있네요. 언뜻보면 어설픈 홍매흉내를 내듯, 꽃봉오리에 가득히 올라온 붉은 기운이 터지기 직전입니다. 일거에 옥수수 터지는 소리를 내면 그 얼마나 황홀할지... 꽃잎 터지는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청력을 가진 사람은 이 세상 가장 행복한 사람이려니 싶군요.
하긴 요즘 주말아침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있네요. 온택트로 만나서 근대시인들의 시를 낭독하고 대화하는 지인들이예요. 어제는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을 만났는데요, 이 시가 1926년 출간되었다니, 100년이라는 장강 위에서 후손들이 그의 시를 읽고 노니는 것 만으로도 만해는 참 행복하겠다 생각했어요. 회원들은 말하길, 김소월 시인의 시에 비해 만해의 시는 참 어렵다고... 하지만 누구보다도 독립운동을 언행일치시킨 시인이 들려주는 아름다운 시어에 감탄했습니다. 미미한 등불이 되어서라도 민족의 독립을 간구하며 어두운 밤을 지키겠다는 시인의 마음은 오늘날 파면을 이끌어 낸 우리들의 마음과 다를바 없지요.
새벽 햇살을 보며 어제 안준철시인께서 보내주신 전주 구이저수지의 벚꽃길을 보니 후다닥 달려가보고 싶군요. 어제도 하루종일 수업한다고 실내콕. 오늘은 더 부지런하게 할 일의 순위를 정해서 봄의 합창 풍경소리 중 하나라도 담아보는 시간을 가져야겠습니다. 한용운 시인의 <알수 없어요>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알수없어요 – 한용운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
입니까
지루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
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밝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노을은 누구의 시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사진, 안준철시인 제공-구이저수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