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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봄날아침편지360

2025.4.13 이생진 <꽃처럼 살려고>

by 박모니카

툭 떨어진 붉은 동백꽃, 동박새에게 씨 하나라도 주었는지... 동백꽃보다 더 이쁜 이들을 환영한다며 목청을 뽑아내는 새들이 반가웠어요. 어딜가면 흔적없이 다니라는 엄마의 잔소리가 딱 떠오르게, 들리는 저 소리는 동박새가 맞기나 한지 두리번 거리다가 동백꽃 한송이 떨어지듯, 계단에서 철퍼덕 한 것도 매양 즐거운 일. 무릎이야 아프던 말든 사방에 퍼진 붉은 물결 담고 싶어서 정신도 잠시 혼미해질 정도로 사진을 찍었네요.

진작부터 일정표에는 시낭송회원 선생님들과 봄나들이 간다고 팔랑거리고, 무엇이 그리 매일 매일 할 일이 많은지 맘 속의 바퀴는 끊임없이 돌아가는 터 였지만, 그래도 다 때가 있고, 그 만한 이유가 있으니, 내게 이런 인연의 시절이 있는 것이지 싶어서 동행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여행나들이를 함께 하는 내내 동행인연들 덕분에 참 평화롭고 든든했습니다.


홀로 여행이 아닌 경우, 가장 난제 중 하나는 함께 하는 사람들과의 여행호흡입니다. 합창대의 화음에 단발이라도 삐져나오는 소리, 한마디만 있어도 파음이 생기듯이, 여행도 마찬가지... 구운계란 속에 담긴 온기, 귤껍질 까주는 손길 속에 들은 친절. 운전대 좀 잡았다고, 오롯이 챙김과 우대를 받기만 해서 지극히 죄송스러웠지요. 하지만 누군가의 대접을 받는 일은 참 행복. 어딜가나 룰루랄라 했습니다. 그러고보면 제가 엄청 이기적인 사람인가 봅니다.^^


보령 죽도의 상화원과 서천 마량리 동백정은 충남의 보물입니다. 몇 번을 가본 곳이지만 갈 때마다 묵은 한숨을 아무리 내쉬어도 끝없이 받아주는 그의 넉넉한 풍경에 마음이 늘 평화롭거든요. 혼자 갈때도 좋지만 좋은 사람들과 함께 수다 한 바구니 떨어놓고 오는것도 큰 재미구요. 어딜가나 배경상식을 오감으로 느껴야 한다는 강박이 작동하는 저로서는 이런 편안한 만남도 필요하다 싶었습니다.

특히 동백정의 동백, 툭 툭 떨어지는 소리와 요염한 자태로 그를 보러 다가선 우주를 흔드는 기세는 가히 겨울을 이겨내고 꽃을 피우는 동백(冬柏) 이름 값을 합니다. 그런 능력자가 어찌 나무에서만 피려할까요. 온 땅을 붉은 정염으로 물들게 하는 것도 모자라,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라고 한 시인의 마음과 그 시를 낭송하는 또 한 우주의 마음에 까지 피어나는 것은 지당하고 곡진한 자연의 진리... 어젯밤 몰아부친 비 바람에 아마도 동백꽃들은 밤사이 앞 바다 솔섬을 동백섬으로 만들어버리는 마술을 부렸을 겁니다. 비도 그쳤으니 바쁜 내일이 오기 전에 꼭 가보세요.^^ 동백을 소재로 시를 쓴 분들이 참 많지요.. 서정주, 도종환, 문정희 , 이산하, 박남준 등등등,,, 많은 시인 중에서 이생진 시인의 시<꽃처럼 살려고>를 들려 드립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꽃처럼 살려고 - 이생진


꽃피기 어려운 계절에 쉽게 피는 동백꽃이

나보고 쉽게 살라 하네

내가 쉽게 사는 길은

쉽게 벌어서 쉽게 먹는 일

어찌하여 동백은 저런 절벽에 뿌리 박고도

쉽게 먹고 쉽게 웃는가

저 웃음에 까닭이 있는 것은 아닌지


쉽게 살려고 시를 썼는데

시도 어렵고 살기도 어렵네

동백은 무슨 재미로

저런 절벽에서 웃고 사는가

시를 배우지 말고 동백을 배울 일인데

이런 산조를 써놓고

이젠 죽음이나 쉬웠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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