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5.5 박노해 <손무덤>
유치원 졸업하는 딸에게 보냈던 편지를 17년만에 다시 읽게 되었는데요, 그 내용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라니요... 세상에나 이런 엄마가 있을까 싶어서 얼마나 황당하던지, 딸과 통화하던 중 너무 무안해서 다른 여자 이야기를 흉보듯 크게 웃었네요. 7살 어린아이에게 유치원 졸업축하 편지라고 하기에는 ’참 어렵다’ 싶었겠어요. 그리고 편지글은 또 왜 그렇게 길게 썼는지, 무슨 말이었는지나 알았냐고 물었더니, 그때는 아마 한글도 채 못 읽었을 거라고, 20살 때 우연히 발견해서 그때부터 종종 꺼내 읽기도 하고, 또 제게 편지 쓸 때 그 내용을 상기해서 쓰기도 한다고 말하는 딸!!
오늘이 어린이날이네요. 부모에게 모든 자식은 어린이이니, 설혹 그 자식이 오십이 되고 예순이 되었다 할지라도, 그의 어릴적 어린이날에 보냈던 마음자락 다시 일으켜서 편지도 써보시고, 맛난 식사도 하시고, 커피 한잔 마시라고 쿠폰도 쏴 보시면 어떨까 생각해보네요. 저도 제 딸에게 저의 40대를 다시 생각나게 해 준 선물로 쿠폰 한 장 팍팍 쏘려합니다.
어젠, 새벽부터 친정 엄마와 목욕동행후, 푸르른 청보리밭과 노란 유채밭을 찾으러 고창에 잠시 다녀왔답니다. 사실, 다리에 힘이 없어 못 걷겠다는 엄마를 ‘더 걸어야 힘이 생기지’라고 속으로만 대답합니다. 어린아이 달래듯, 고창 장어한번 드시러 가자고, 학원에서 맨날 일만 하니까 딸 보신 한번 해야겠다고... 하는 말씀에는 후다닥 일어서시더군요.
장어는 잘 먹었는데, 막상 고창 청보리밭은 들어가지도 못하고,, 거리에서만 2시간여 꼼짝 못하다가 시간을 너무 허비해서, 해는 저물고, 마음은 급해지고, 결국 되돌아 왔습니다. 넓게 펼쳐진 시원한 초록 물결 보리밭에서 사진 한 장 찍어 드리려 했었는데, 많이 아쉽네요. 내년에 다시 또 모시고 2차 시도를 해봐야겠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오늘 내일 꼭 가보셔요^^
연휴덕분인지 어제 군산 근도심에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책방지기 했더라면, 손님이나 있었을까... 오늘은 월요일 이지만 어린이날이니 책방문 열고, 잠시 손님 맞이 하렵니다. 혹시 어린이가 올라오면 작은 선물도 주고요. 동화책 사는 친구들에게 책 할인도 엄청 해주고요~~ 그래야 군산에 대한 추억이 오랫동안 남아 있을테니까요. 부모님께는 엽서 한 장 쓰도록 권유도 해볼까 해요. 저 처럼 17년 후 읽게 될지도 모를 ‘좋은 시 편지’를요. 오늘 시는 어린이날 보내드리기에는 다소 슬프지만 한번 읽어보시길 권독합니다. 박노해시인의 <손무덤>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손무덤 - 박노해
올 어린이날만은
안사람과 아들놈 손목 잡고
어린이 대공원에라도 가야겠다며
은하수를 빨며 웃던 정형의
손목이 날아갔다
작업복을 입었다고
사장님 그라나다 승용차도
공장장님 로얄살롱도
부장님 스텔라도 태워주지 않아
한참 피를 흘린 후에
타이탄 짐칸에 앉아 병원을 갔다
기계 사이에 끼여 아직 팔딱거리는 손을
기름먹은 장갑 속에서 꺼내어
36년 한많은 노동자의 손을 보며 말을 잊는다
비닐봉지에 싼 손을 품에 넣고
봉천동 산동네 정형 집을 찾아
서글한 눈매의 그의 아내와 초롱한 아들놈을 보며
차마 손만은 꺼내주질 못하였다
환한 대낮에 산동네 구멍가게 주저앉아 쇠주병을 비우고
정형이 부탁한 산재관계 책을 찾아
종로의 크다는 책방을 둘러봐도
엠병할, 산데미 같은 책들 중에
노동자가 읽을 책은 두눈 까뒤집어도 없고
화창한 봄날 오후의 종로거리엔
세련된 남녀들의 화사한 봄빛으로 흘러가고
영화에서 본 미국상가처럼
외국상표 찍힌 왼갖 좋은 것들이 휘황하여
작업화를 신은 내가
마치 탈출한 죄수처럼 쫄드만
고층 사우나빌딩 앞엔 자가용이 즐비하고
고급 요정 살롱 앞에도 승용차가 가득하고
거대한 백화점이 넘쳐흐르고
프로야구장엔 함성이 일고
노동자들이 칼처럼 곤두세워 좆빠져라 일할 시간에
느긋하게 즐기는 년놈들이 왜 이리 많은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선진조국의 종로거리엔
나는 ET가 되어
얼마간 미친놈처럼 헤매이다
일당 4,800원짜리 노동자로 돌아와
연장노동 도장을 찍는다
내 품속의 정형 손은
싸늘히 식어 푸르뎅뎅하고
우리는 손을 소주에 씻어들고
양지바른 공장 담벼락 밑에 묻는다
노동자의 피땀 위에서
번영의 조국을 향락하는 누런 착취의 손들을
일 안하고 놀고 먹는 하얀 손들을
묻는다
프레스로 싹둑싹둑 짓짤라
원한의 눈물로 묻는다
일하는 손들이
기쁨의 손짓으로 살아날 때까지
묻고 또 묻는다
사진제공, 박세원문우
장어집 앞에서 엄마랑 유채랑,,추억사진
딸아이 유치원 졸업식에 써준 축하편지?? 참 욕심 많은 엄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