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6.9 정호승 <아버지의 마지막 하루>
요즘 유달리 갖가지 새소리가 지천에 가득, 오죽하면, 제 마음이 변덕을 부려서 시끄럽게 들리는 건 아닌가 할 정도입니다. 어제는 일부러 나뭇가지와 하늘을 바라보니, 어린 개체수들이 부지런히 오고 가더군요. 봄이면 땅 위에서만 꽃이 피어나는 게 아니라 하늘에서 수많은 생명들이 부화했을 터, 어미아비새는 새끼들 먹이고 지키느라, 각 영역타툼에 전쟁터, 총알소리 같은 새소리이겠다 싶네요. 잠꾸러기 제 아들이 도저히 시끄러워서 잘 수가 없다고 일어나는 것을 저 새들이 안다면 아마도 환호성을 지르겠지요. 하여튼 유월의 아침은 마치 버릴 수 없는 고유한 천 조각들이 모여서 완성되는 패치워크(patchwork) 가방 같아요. 이 가방 들고 소풍길 가는 길,,, 좋은 사람들 불러 모아 만들어 봐야겠어요.
토요일 여행 때 못했던 보충 수업을 어제는 하루 종일... 고등부 모평설명은 말도 많아야 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다 보니, 저 답지 않게 아주 깊은 꿀잠을 자더라네요. 신체적으로는 요 며칠 피곤이 누적되었을 만도 하지요. 그러나 새소리들 덕분인지, 오뚝이처럼 앉아서 편지를 씁니다. 동시에 이런 건강체질을 주신 부모님께도 감사의 마음이 생기고요.
천주교에서는 어제가 ’ 성령강림 대축일’이라는 날, 이 날 각 성당에서는 성령칠은‘을 뽑는 재밌는 행사가 있어요. 말 그대로 성령이 주시는 7가지 은혜인데요, 인간의 지성과 의지에 관련된 단어가 쓰여 있습니다. ’ 슬기(지혜), 통달(깨달음), 의견, 지식, 용기(굳셈), 효경, 경외심(두려워함)‘입니다. 작년에는 제가 뽑은 글은 ’ 경외심‘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요, 어제는 ’ 효경‘을 뽑았습니다. 부모 형제를 비롯하여 만나는 모든 사람을 예로써 대하라는 뜻이 있겠지요. 제게 딱 맞는 표현이어서 더 좋았습니다. 일종의 경계표시등이니, 잘 가지고 다니면서 새겨야겠다 생각했어요.
생각난 김에, 논어에서 공자와 제자들의 대화 중, ’ 효‘에 대한 글을 알려드릴게요. 저도 책 보고 베껴 쓰는 수준이니, 혹시나, ’이런 글을 다 기억하나??‘라고 놀라진 마세요. ^^
제자 번지와의 대화에서, 子曰: "生, 事之以禮, 死, 葬之以禮, 祭之以禮."(자왈, 생 사지이례 사 장지이례 제지이례) - "부모가 살아 계실 때는 예로써 섬기고, 돌아가셨을 때는 예로써 장례를 치르고, 제사도 예로써 모셔야 한다는 것이다. “
제자 자하와의 대화에서, 子曰: "色難. 有事, 弟子服其勞”(자왈, 색난 유사 제자복기로) - "항상 즐거운 낮으로 부모를 대하는 것은 어렵다. 일이 있으면 자식이 그 수고로움을 대신하라. “
제자 자유와의 대화에서, 子曰: "今之孝者, 是謂能養” 至於犬馬, 皆能有養, 不敬, 何以別乎?" (금지효자 시위능양 지어견마 개능유양 불경 하이별호) - "요즘에는 효를 단지 밥을 챙겨드리는 것으로만 생각하지만, 밥을 챙겨주는 것은 개나 말에게도 모두 그러하다. 부모를 존경하지 않는다면 무엇이 다르겠는가?"
위 세 가지 대화문은 책 읽기와 실천이 동행하는 삶을 살라고, 저 스스로에게 세뇌시키느라, 책 페이지를 접어놓은 문구입니다. 한 가지라도 메모하고 종종 읽어보심도^^... 정호승 시인의 <아버지의 마지막 하루>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아버지의 마지막 하루 - 정호승
오늘은 면도를 더 정성껏 해드려야지
손톱도 으깨어진 발톱도 깍아드리고
내가 누구냐고 자꾸 물어보아야지
TV도 켜드리고 드라마도 재미있게 보시라고
창밖에 잠깐 봄눈이 내린다고
새들이 집을 짓기 시작한다고
귀에 대고 더 큰 소리로 자꾸 말해야지
울지는 말아야지
아버지가 실 눈을 떠 마지막으로
나를 바라보시면 활짝 웃어야지
어릴 때 아버지가 내 볼을 꼬집고 웃으셨듯이
아버지의 야원 볼을 살짝 꼬집고 웃어야지
가시다가 뒤돌아보지 않으셔도 된다고
굳이 손을 흔들지 않으셔도 된다고
가시다가 중국음식점 앞을 지나가시더라도
짜장면을 너무 드시고 싶어하지 마시라고
아니 짜장면 한 그릇 잡수시고
가시라고 말해야지
텅빈 아버지의 입속에 마지막으로
귤 향기가 가득 아버지의 일생을
채우도록 귤 한 조각 넣어드리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기 때문에
죽음이 아픈 것이라고
굳이 말씀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아는 사람은 다 안다고
성당에서 뽑은 은사 '효경'
지인이 보내준 앱 링크에서도 '효경'이 나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