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봄날 아침편지 70

2025.6.27 김종제 <유월의 이유>

by 박모니카

여름숲이 빼곡하게 들어차있습니다. 초록나뭇잎들의 빛나는 윤기, 붉게 익은 과일들의 함성 속에서 사는 이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소위 자연을 닮아가는 사람들, 텃밭 일구고, 산 나물 캐고, 벌집과 공생하고, 주인 없는 과일나무의 벗이 되고, 녹음진 그늘아래 평상에서 챙 넓은 모자로 이불 삼고 산새들이 말하는 잔치에 초대되는... 그런 여름날의 진짜 주인으로 살아가는 법이 왠지 멀지 않은 듯한 마음으로 새벽을 엽니다.


오늘 아침에는 지인과 시댁 과수원을 갈 예정인데요. 복숭아가 주종인 그곳에 자두나무 두어 그루가 있어요. 매실나무에 열린 황매실을 동네의 다른 분이 가져갔다고 하길래, 시동생에게 엄청 서운하다고, 나를 불렀어야지...라고 생떼를 썼더니, 열리는 자두나무 자두는 형수님이 모두 가져가라고 했답니다.^^


갑자기 어제 그 자두가 생각나서 과수원에 가고, 생전 처음 보는 푸른 복숭아 여름숲으로 가득해서 얼마나 싱싱해지던지요. 복숭아꽃 피었을 때, 꽃 사진 찍고, 가지마다 한 두 개의 꽃만 필요하다는 복숭아 생존법을 들은 지 두 달 정도밖에 안되었는데, 어느새 가지마다 털 복숭이 초록 복숭아들이 노란 적삼을 입은 모습으로 달려 있었습니다. 이미 다른 수종에서 첫 복숭아를 맛보았지만, 직접 복숭아 영그는 과정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죠.


그 초록열매들 사이에 붉은 전구알을 가득 달고 서 있는 자두나무. 사다리가 보이길래, 흔들거리며 한 발 한 발 올라가서 자두를 모자에 담았습니다. 그러기를 몇 차례, 들고 갈 수 있을 만큼만 따야지, 내일 다시 와야지 했지요. 자두를 나눠 줄 사람도 떠올리고, 사다리 위에서 나무 위로 보이는 또 다른 세상지붕을 보는 재미는 그야말로 ‘순간이 천국’이었네요.


오늘은 열린 자두란 자두를 모두 따와서, 친정엄마와 동생들도 주고, 해마다 말 많이 하는 직업에 목을 아껴야 한다고 찐 도라지 청을 만들어 주시는 선배님도 드리고, 매실청처럼, 자두청도 담아놓아, 겨울 흰 눈 펑펑 오는 날, 따뜻한 자두청 차를 만들어서 벗들과 나누고 싶고요. 그런 마음으로 다시 또 시댁 과수원으로 행차합니다. 갑자기 제 눈앞에 각종 과일청과 산나물 장아찌로 항아리를 채우는 모습이 안개처럼 피어오르네요. ~~


벌써 금요일, 지난 6.3일에 있었던 대선, 그리고 선출되어 일하며, 국민의 대리인이 된 대통령에 관한 소식을 듣는 것만으로도 매일이 즐거운 유월. 하루하루가 마치 일 년 일 년 지나가듯, 일상이 평화롭고 즐겁다는 사람들이 많아진 유월의 시간들... 아마도 더 푸르게 더 굳건한 나무가 되어 청푸른 칠월의 세상을 열어주겠지요. 김종제 시인의 <유월의 이유>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유월의 이유 - 김종제


비단으로 수놓은 이 땅의

유월에는

종이 위에 문자로 쓰여진

낡은 경전이 필요한 게 아니다

누구의 말씀보다 더 좋은 것이

우리 마을마다 동네마다

아직 서낭당으로 솟대로 서 있다

대문 열고 들어오면

천장에도 부엌에도 장독대에도

그런 말씀보다 좋은 것이 그득하다

이 땅에 있어야 할 것은

무지갯빛으로 찬란한 이념이나

붉은 깃발로 눈 어지럽히는

사상이 아니다

우리의 산하에는

들꽃 무리 지어 핀 다음에

그 고운 향기가 우물까지 빨래터까지

멀리 퍼져 나가야 하고

우리의 들녘에는

과수 무럭무럭 자라난 다음에

튼실한 열매 맺어

다리 밑까지 달 아래까지

배불리 먹여야 한다는 것이다

쇠 녹이는 그 향기로

생 있는 것마다 고루 쉬어야 하고

마음 죽이는 그 열매로

명 있는 것마다 길게 나누어야 하고

이 땅에 유월이 있어서

무기의 계절이 없어야 하고

금을 그어놓은 철책이 없어야 하고

비무장의 눈빛만 있어야 한다

가야금 명창 선배님께서 사 주신 삼계탕... 지금도 배가 불러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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