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6.26 정호승 <슬픔이 기쁨에게>
마음이 산란하면 꿈속에서도 평온하지 못하는지,,, 복실이도 잃어버려서 한참을 우는 꿈까지 꾸고, 새벽 3시에 나이 든 표 내느라, 한참을 잠을 못 이루다가, 거꾸로 늦게 일어나는군요. 얼마 전 모 시인은 말했어요. 슬픔의 모양도 사람마다 달라서 슬픔을 해소하는 방법도 다르다고요. 하지만 가장 좋은 방법의 형태는 마음속의 것을 바깥으로 꺼내놓고 함께 위로를 건네는 것이라고요. 그런 면에서 글쓰기는 진정으로 큰 힘이 되고, 슬픔을 언어로 표현하는 순간 더 이상 괴로움이 되는 주체가 근접하지 못한다 했어요.
맞는 말 같아요. 말하기보다 글쓰기로 언어로 무언가를 토해내면 내 안의 자아가 간직했던 주관적인 감정들이 어느 정도 공론의 장에 서서 객관성을 가지는 발표자가 되는 듯하거든요. 아무리 감정들이 소용돌이쳐도 누군가가 지켜보는 무대에 서면 왠지 긴장되고,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려 노력하니까요.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성냈던 감정들이 파편 되어 찌꺼기처럼 따로 분리되는 묘한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글을 쓰나 봅니다.
이럴 때는 시를 쓰는 시인을 만나서 무념하게 그의 말을 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요. 아주 잠깐이라도 학원에서 벗어나 나만을 위한 시간을 만들어야겠어요. 요즘 학생들의 기말고사 준비 때문에 계속 일에 얽매여 있어서 잡다한 감정들이 독이 되는 듯, 진정한 해소법을 찾아 나서야지요. 그러고 보면 겉으로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하루일상일지라도, 뭐가 그리 다른 시간들이 찾아오는지, ‘살았다는 증거인 거겠지’ 그렇게 격려하며 하루를 시작하네요. 정호승시인의 <슬픔이 기쁨에게>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슬픔이 기쁨에게 - 정호승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 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당시 얼어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 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길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