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봄날 아침편지 81

2025.7.8 김헌수 <조금씩 당신을 생각하는 시간>

by 박모니카

영국문학사에서 형이상학파 시인(Metaphysical Poet)의 대표, 존던((John Donne, 1572-1631)과 앤드류마블(1621-1678)의 시를 만났습니다. 어제 삼례책마을에서 열렸던 영문학자 이종민 교수의 명시특강 <불멸의 새와 꽃의 영광을 노래하라>입니다. 작년 말에 특강 1편으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비롯하여, 윌리암 워즈워드, 예이츠, 윌리엄블레이크, 엘리자베스 브라우닝 등의 시를 읽고, 영화 속 명대사도 들어보는 즐거운 시간이 있었죠.


이번 특강 2에서는 낯선 시인들이 많지만 어제 만난 두 시인은 저도 작품명 정도는 알고 있는 시인입니다. 당시 영국인들의 사랑을 표현한 구애시에 매우 혁명적인 언어가 사용되어 ’ 형이상학‘이라는 학파가 생겼을 정도입니다. 그 선두에 있는 존던의 <The Flea 벼룩>과 앤드류 마블의 <To His Coy Mistress 수줍은 여인에게>라는 작품이 있지요. 마블작품의 시 일부구절을 볼까요.

My vegetable love should grow

Vaster than empires and more slow;

An hundred years should go to praise

Thine eyes, and on thy forehead gaze;

Two hundred to adore each breast.

But thirty thousand to the rest;

An age at least to every part,

And the last age should show your heart.

For, Lady, you deserve this state

Nor would I love at lower rate.


But at my back I always hear

Time’s winged chariot hurrying near:

And yonder all before us lye

Deserts of vast eternity.


30여 년 전, 이 시를 처음 만났을 때도, 위의 초록체 문장이 좋아서 외웠고, 그 뒤 제 글을 쓸 때 종종 인용하는 문구입니다. 특히 But at my back I always hear / Time’s winged chariot hurrying near: 이 표현은 시간에 대한 관념을 추상이 아닌 실재를 느끼고자 할 때 정말 적확한 표현이지요. 물론 구애의 대상이 다른 점이 있지만요... 저는 연인이 아닌, 제 삶 그 자체예요..^^ 하여튼 4주간 재미나게 삼례 책마을로 여행 다니게 생겼습니다. 영어를 잘 알아야 듣는 시간이라기보다는 영국의 역사와 문학이 현대의 다양한 영화와 음악에 맞물려서 전개되는 특강이라서 추천합니다. 단, 1회라도 들어보고 싶으시다면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제가 운전도 해드려요.~~


요즘 제 발은 자꾸 황토산책길로 나가자고 하네요. 나라가 안정되어가고 있다고 느껴서인지, ‘어준방송’ 뉴스보다는 평화로운 음악이나, 시 낭송 영상에 먼저 손이 가구요. 그래서인지 아침 운동 겸 산책하는 저 만의 ‘홀로 시간‘이 참 좋습니다. 오늘은 어제 배운 영시 중 다른 부분도 암기 한번 해보렵니다. 어제 만난 김헌수 시인의 <조금씩 당신을 생각하는 시간>를 읽으며, 영미시인들의 구애시가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우리의 사랑 시 정서로 탈바꿈해서 오는 것 같아서 함께 읽어보시게요. 다소 길지만 꼭 끝까지 저와 함께... 봄날의 산책 모니카.


조금씩 당신을 생각하는 시간 – 김헌수


봄별처럼 나를 쓰다듬어 주는 당신, 퉁퉁마디 같은 사랑이 깔려 있다 붉은 나염이 날리는 함초발에는

비자나무 숲에 가 봐야겠어요 당신과 나의 푸른 틈새를 백빼하게 채워 풀 그리읍을 쏟아 놓고 한 움큼 피톤치드에 깊어지고 싶어


고요를 즐기는 벚나무 앞에서 아침을 맞는다 되찾지 못한 청춘, 편하게 읽는 조간신문 위로 하얀 꽃잎이 떨어진다 당신 때문에 화려했던 그날, 그 봄


당신께로 향한 촉수를 뻗어 내 안에 파고드는 꿈을 가되어요 나지막이 콧노래 부르며 혼자서 길을 나서는 앵무조개, 노래가 들리나요


다섯 갈래로 번지며 봉굿하게 부풀어 오른 도라지꽃, 밝은 먹고 다니나는 당신을 향한 안부가 터져 나온다

그늘을 좋아하는 습관을 가졌다 젖은 눈물과 엎드린 구름, 물에 만 찬밥을 먹는 당신과 나는 조팝나무 아래서 우자랐다


새벽에도 우리는 합리적이에요 늙은 모과나무 길을 진지하게 돌아오면서 나를 기다려 준 당신에게 노란 모과하나를 전해요


찔레 덤불을 돌아 나오는 당신과 집으로 돌아가는 개미들의 발자국을 센다 흘러가는 사랑과 노동은 목을 축이며서로에게 붙어 가자는데


단골 술집에 와 울음을 마시고 빈 의자에 앉는다 아픈 당신을 홍얼거리다가 녹투전을 시켜 놓고 옆질러진 세월을 읽는다 죽은 제라들에 룰을 준다


저녁은 탕신처럼 느리게 오더군요 끝물 복숭아를 숨겨놓은 여름에 등을 대고 누운 방, 나를 길게 부르고 안아주던 당신의 목소리가 흩어지던 밤


발꿈치를 들고 당신을 기다립니다 샤플 리듬으로 뛰어오는 새벽 두 시, 숨결을 모아 반가운 화환을 걸어 드릴게요


잔설이 내린 아침 조릿대 잎새에 당신 생각을 결어 놓는다 겨울바람이 핦고 간 자리에 슬그머니 앉혀 본 당신과 나. 축축한 목판화 한 점


문지방을 넘은 겨울을 묶고 천혜향을 까먹으며 과육이 묻은 당신 입술을 흡친다 사랑을 짓고 부수며 생긴 근심도 묶어 놓는다


바람에 매달린 가랑잎에 당신 숨결을 그려 넣었어요 새벽녘 찬물에 행궈진 무늬, 내 안에 슬어 놓은 당신이 물뱀처럼 흔들리며 따라오네요


울창한 풍경에 그믐을 앉혀 놓고 꺼칠한 얼굴을 만지며 울었다 당신과 나의 갈피 사이에 응달이 들어왔다 어깨를 들썩이는 날이 더불어 많아졌다


마른 모래틀 털며 에곤 실레Egon Schiele 화집을 뒤적여요 아프게 웃어 대는 검은 고양이는 가르랑거리며 날 보네요 당신과 제 날을 기대하며 살아요


시큰거리는 콧등을 잡고 진눈깨비를 맞아요 목양말을 신은 당신의 발등을 털어 주며 곁어요 물기 어린 고백을 명랑하게 품어 볼까요 나에겐 언제나 첫음절인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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