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봄날 아침편지 93

2025.7.20 정지용 <비> / 채영숙 <소낙비>

by 박모니카

아침에 눈을 뜨면 저절로 핸드폰으로 손이 가지요. 기계에 지배당하는 느낌이 부지기수이지만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 중 하나, 카톡에 떠 있는 ’ 생일표시‘예요. 예전에는 모든 것을 암기해야만 했는데, 지금은 자동적으로 뭔가를 알려주는 앱들이 많아서 암기력은 또 다른 능력인 것 같이 느껴져요. 오늘 아침에도 여동생의 생일이 떠 있네요. 울 언니는 새벽부터 잠도 안 자고 뭐 하나 하겠지만, 이 시간이 아니면 또 잊을까 봐 작은 선물 하나 보냈어요. 멀리 사니까 얼굴도 자주 못 보고 사는 마음이 아쉽구요.


카톡의 유용한 기능 중 하나인 ’ 선물코너‘. 얼마 전에는 황톳길 산책하는데, 제가 신고 있는 샌들이 보이는 거예요. 어느 해 지인께서 당신 거랑 두 개 샀다고, 편하다고 하시며 주셨는데, 정말 가볍고 편하기가 제 맨발 같아서 여름이면 매일 신고 다녀요. 운동기구에 앉아 무릎단련을 하는데, 이 샌들이 보이고, 더불어 그분의 미소가 보이고... 체력이 약한 분인데, 건강은 어떠신지 궁금하고... 이 카톡으로 작은 선물 하나 보냈더니, 오랜만에 만난 언니의 수다를 듣는 것 마냥, 재밌는 글이 와서 더 큰 선물을 받은 듯 즐거웠어요. 핸드폰에 이런 기능이 없었다면, 고마움과 사랑의 마음을 바로 전할 수 없었을 테니,,, 무조건 기계를 거부할 일이 아니라, 좋은 정보와 기능을 잘 알려주는 비서친구 한 명 더 있다 생각하기로 했지요.^^


요즘 발바닥에 감겨오는 황토의 촉감이 좋아서 자꾸 발은 산책하자고, 길을 만들어주는데요. 폭우로 타지방 분들의 애환을 뉴스로 들으면서 저는 호젓하게 자꾸 걸어요. 비가 온다는 예보에 사람들이 나오지 않아서 그 좋은 공간을 저 혼자 독차지하고 있는 편이죠. 하여튼 처음으로 군산시민이 되길 잘했다는 말이 절로 나오며, 이사 갈 마음은 자꾸 뒤로 밀려가네요. 어제도 온택트 수업을 2시간이 넘게 즐기면서, 산책하러 나섰는데요, 숲 속 우거진 나뭇잎 사이로 방울방울 떨어지는 비에 저절로 정지용 시인의 <비>의 한 구절이 생각나고, 문우들과 함께 걸으며 시 얘기도 나눴으면 좋겠다 생각했지요. 회가 거듭될수록 문우들의 시 발제, 발표와 창작시가 돋보여서, 저야말로 호사를 누리는 수업시간입니다. 정지용의 시 <비>와 어제 발표한 채영숙 문우님의 창작시 <소낙비>를 들어보실래요. 봄날의 산책 모니카.


비 - 정지용


돌에

그늘이 차고


따로 몰리는

소소리 바람


앞섰거니 하여

꼬리 치날리어 세우고


종종다리 까칠한

산새 걸음걸이


여울지여

수척한 흰 물살

갈갈이

손가락 펴고


멎은 듯

새삼 듣는 빗낱.


붉은 잎 잎

소란히 밟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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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낙비- 채영숙


앞산 구름이 수상하다


일순 후두둑 호박 잎사귀를

두두린다

구름보다 먼저

바람보다 빨리

빨래 걷어야지

마당에 널어 둔 고추도 걷어야지


꽁지 빠지게 달리는 우리 할머니

덩달아 나도 뛴다

책가방 마루에 던져놓고

비설겆이 한다

할머니도 나도 검둥개도

열대어처럼 젖었다

처마밑에 쪼그리고 앉아

물끄러미 바라보는 빗방울

생각난 듯 가방에서 꺼낸 시험지

동그라미 동그라미

어느새 무지개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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