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8.6 고명재 <사랑을 줘야지 헛물을 켜야지>
비소식이 있는 아침, 생각해 보니, 8월은 물방울의 시간으로 기억되기도 하네요. 뜨거운 볕이 내리쬐다가도 변덕스럽게 힘찬 소나기를 넘어 폭우가 쏟아지기도 하고요. 요즘 같으면 산책길에 쿵쿵거리며 잠깐씩 뛰기도 하니, 땀방울까지 우수수... 어찌 됐든 물방울로 세례 받는 여름한철에 서 있습니다.
학원 교실마다 에어컨이 가동되어 개운하고 시원하지만, 제 사무 보는 자리에는 선풍기 한 대만 돌아가니, 약간 덥게 느껴지는 듯한가 봅니다. 그런데 저는 그 묘한 따뜻함이 좋아서 에어컨을 켜지 않는데요, 그럼에도 학생들의 콜록거림에 같이 노출되다 보니, 어제는 저도 쬐끔 목도 따끔, 머리도 찔끔거리고... 후다닥 비타민 발포량 늘려서 몇 잔 마시고, 오자마자 잠을 잤더니 조금 우선해졌군요. 여름날 배출되는 수분량의 두세 배 정도는 늘 준비하고 마셔주어야겠어요.^^
우리말에 ’비긋다‘라는 표현이 있는데요,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상태를 말하지요. 어느 시인은 머릿속에 담은 시집 한 권을 우산으로 삼고 비긋기를 했었다고 고백했는데요. 다른 시인들에게는 미안했지만 나중에 쭈글어진 시집을 보니 그날의 기억이 살아나 오히려 생생한 문장들이 나왔다고 하더군요. 영원히 내리는 비는 없으니 비긋기의 마음속에는 분명 무언가를 기다리며 희망하는 메시지를 담은 행동이겠지요.
싱싱한 호박잎을 주신 지인, 받을 때는 그저 쉽게 받았는데, 늦은 밤 그의 정성이 생각나고, 호박잎을 살짝 데쳐 가지런치 펼치다 보니, 그분의 손길이 전해오더군요. 얼마 전에는 각종 야채쌈을 깨끗이 단정하게 주셨는데요. 아마도 더운 여름이라고 투털대기만 하는 말의 화살에 시원한 한 줄기 ’소낙비긋기‘를 선물해 주신 같아서 고마웠습니다. 오늘 점심으로 엄마와 함께 호박잎쌈을 먹을까 하네요. 고명재시인의 <사랑을 줘야지 헛물을 켜야지>입니다. 시인과 엄마가 나누는 국수말이, 코끝이 시큼해져서 들려드려요. 봄날의 산책 모니카.
사랑을 줘야지 헛물을 켜야지 - 고명재
가게문을 닫고 우선 엄마를 구하자 단골이고 매상이고 그냥 다 버리자 엄마도 이젠 남의 밥 좀 그만 차리고 귀해져 보자 리듬을 엎자 금(금)을 마시자 손잡고 나랑 콩국수 가게로 달려나가자 과격하게 차를 몰자 소낙비 내리고 엄마는 자꾸 속이 시원하다며 창을 내리고 엄마 엄마 왜 자꾸 나는 반복을 해댈까 엄마라는 솥과 번개 아름다운 갈증 엄마 엄마 왜 자꾸 웃어 바깥이 환한데 이 집은 대박, 콩이 진짜야 백사장 같아 면발이 아기 손가락처럼 말캉하더라 아주 낡은 콩국수집에 나란히 앉아서 엄마는 자꾸 돌아간 손가락을 만지작거리고 오이고추는 섬덕섬덕하고 입안은 푸르고 나는 방금 떠난 시인의 구절을 훔쳤다 너무 사랑해서 반복하는 입술의 윤기 얼음을 띄운 콩국수가 두 접시 나오고 우리는 일본인처럼 고개를 박고 국수를 당긴다 후루룩후루룩 당장이라도 이륙할 것처럼 푸르륵 말들이 달리고 금빛 폭포가 치솟고 거꾸러지는 면발에 죽죽 흥이 오르고 고소한 콩물이 윗입술을 흠뻑 스칠 때 엄마가 웃으며 앞니로 면발을 끊는다 나도 너처럼, 뭐라고? 나도, 나도 너처럼, 엄마랑 나란히 국수 말아먹고 싶다 사랑을 줘야지 헛물을 켜야지 등불을 켜야지 예민하게 코끝을 국화에 처박고 싶어 다음 생엔 꽃집 같은 거 하고 싶다고 겁 없이 살 때 소나기 그칠 때 구름이 뚫릴 때 엄마랑 샛노란 빛의 입자를 후루룩 삼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