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봄날 아침편지 112

2025.8.8 김태완 <입추 이후>

by 박모니카


입추의 문이 열려서인지, 밤새 돌고 있었던 선풍기를 끄고, 침대 끝에서 털썩거리던 이불자락도 끌어올렸습니다. 길어봤자 더워봤자 얼마나 갈 것이냐,,,라고 말은 했지만 진짜,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고 바람 한 점이 훅 하니 들어오니, 잠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네요. 이렇게 또 세월은 가는구나 싶어서요. 흐음... 이렇게 세월은 가는가 봐요.^^


이틀 전 만해도 여름을 상징하는 말들 -단어, 구절, 문장, 관련 책과 제목, 작가- 등을 생각했는데, 이제는 가을을 드러내는 말들이 저절로 떠오르겠지요. 글을 쓴다는 것은 작가의 상상력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작가가 사용하는 말(평상어와 작품어)이 뿌려질 곳에 얼마나 작가의 발품이 묻어있는가 하는 건데요.


어젠 우연히 배우 차인표가 황순원 문학상을 받았다는 글 한 줄을 보고, 그의 인터뷰를 들어봤습니다. 처음 그가 티브에 나와, 준수한 외모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모 드라마(제목 잊음^^)의 한 장면도 생각나고요, 그 후에 자원봉사자로서의 삶, 입양부모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다양한 모습에 더 매력적이었지요. 그러더니, 어느 날 소설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이 알려지면서 더욱더 새로운 그의 모습을 보았죠.

역사관에 무슨 관심이 있을까라고 보였던 그가 위안부 할머니 한 분을 만나면서 그의 인생도 큰 변화를 겪었다고 말했습니다. 인터뷰하는 내내, 그의 말투와 몸짓, 특히 눈빛이 인상적이었는데요. 16살 어린아이가 위안부로 끌려갈 때의 상황을 직접 본 듯한 그의 멈칫거리는 말소리에 진심이 묻어나서 저도 귀 기울여 들었습니다. 최근에는 영국 옥스퍼드대 필독서로서도 지정되었다고 하네요.


그가 소설을 쓸 때, 그의 단편을 읽어준 독자가 바로 그의 어머니였답니다. 어느 날 어머니는 이런 말을 했다 해요. ‘너의 상상력이 글을 쓰는 기반이 될 수는 있어도, 글에 나오는 장소를 직접 가보지 않고 쓰는 것은 언젠가 허물어질 모래성과 같다’라고요. 그래서 소설에 나오는 그 모든 장소를 가는 경험을 체득하면서 소설을 쓰느라 오랜 세월이 걸렸더군요. 그냥 인기인 한 사람이 인기몰이로 글을 쓴 게 아니어서 더 반가웠네요. 링크기사 하나 드리니, 함께 읽어보세요.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 ‘에 한 표를 던지는 저는, 경험과 체득이 상상력보다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마도 저의 빈약한 상상의 세계를 인정하는 꼴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타고난 재주가 상상력이라는 밥상 위에 있다면 후천적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재주는 오로지 ’ 경험과 체득‘이 아닐까 하네요. 그래서 오늘도 특별한 경험이 다가오도록 살아보렵니다.~~ 김태완시인의 <입추 이후>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입추 이후 - 김태완


아침이면 창문 밖 뒷산을 본다

언제 입이 피어나는지

어느 무렵에 푸른 잎들이 가득한지

새들은 어느 푸르름 속에서 지저귀는지

창문밖 뒷산이 사는 시간을 늘 함께한다


입추가 지나자

한낮의 열기는 뜨거워도 저녁 밤공기가 어둠의 온도를 끌어내리고

바람에 몸을 맡긴 산 나무들 천천히 마음의 준비를 하는 듯

마지막 힘을 모으며 뜨거워지는 중인가보다

발그레한 몇몇 잎사귀들이 노랗게 당황하는 걸 보자면


미련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종족의 번식을 위해 자리 잡을 곳을 찾아왔는지

언제부터인가 내 얼굴에 자리 잡은 검버섯

누가 날린 종균인지 알 길 없으나

분명 저 뒷산에서 날아온 전갈 같은 당부로

어서 오너라 너 하나쯤 기꺼이 맞이해야지

어떤 나무로 피어날지 모르는 궁금한 종균을

요즘 토닥토닥 어루만지는 중이다


창문 밖 뒷산이 언제부터인가

나를 살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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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안준철 시인

https://omn.kr/29dq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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