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8.21 김기림 <길>
올여름 내내 길어온 오이의 변신, 오이장아찌를 만드는 비법. 뭐 대단한 차이가 있으랴, 내가 만든 것이 최고 맛이지 싶었는데... 아뿔싸!! 어제 만난 장아찌는 정말 맛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음식 만들어 나눔 하는 봉사활동 현장에 갔었는데요. 제게 주어진 일이 장아찌 소스를 만드는 일이었어요. 양파 까느라, 눈물짓고, 오이껍질 벗기느라 서걱거리는 일이 아닌, 나름 소스 만드는 재미에 오이장아찌를 몇 통 만들어 놓은 터라, 바로 ’ 오키‘했지요.
커다란 솥에 들어가는 양념(식초, 설탕, 간장 등)이 워낙 대량인지라, 양을 조절하기가 다소 어려운데, 총 지휘하는 단장의 말에 따라, 새롭게 장아찌 소스비법도 배웠답니다. 그중 담백한 맛을 우려내는 다시마와 깊은 향기를 풍기며 단맛을 내는 사과조각을 섞어서 뭉근하게 팔팔... 팔팔하게 뭉근 뭉근... 우려내니, 그 맛이 과연 최고였습니다. 단체에 나눔 할 오이장아찌를 모두 담은 후, 소스가 조금 남아서 제가 먹고 싶다고 했지요. 하여튼 봉사라는 땀방울이 들어가고 특별조제 비법으로 탄생한 맛난 음식 만드는 법도 배운 즐거운 시간이었네요.^^
땀이 많이 흘리는 여름 철엔 단백질 및 기타 영양소가 보충되는 보양식도 좋지만, 너무 묵직한 보양음식에 오이나 양파 등의 간장초절임 장아찌 음식은 마치 폭염 속 한바탕 내리는 소나기처럼 명쾌하기 그지없지요. 나이 들어서인지, 가장 애호하는 음식류가 되어가네요.~~ 오늘도 시간 내서 빨간 고추 수확하러 어슬렁 가볼까 하는데요. 채반에 쌓이는 마른 빨간 고추를 만지면서, 조만간 빨간 고춧가루로 재 탄생할 이들을 보기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납니다. 혹시나 노년에 텃밭 달린 집한 채 있으면 더 이상 무얼 바라오리... 싶군요.
글을 쓰고 싶다는 이가, 스스로의 체험이 없이 글을 쓰겠다는 생각을 갖는다면... 그건 바로 거짓과 술수를 부리는 죄인. 거꾸로 말해, 스스로의 체험을 가지고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진실. 오늘도 저는 한 조각이라도 진실된 삶의 현장에서 땀도 흘리고, 그늘이 주는 생명수도 마셔보며, 꿈의 통로인 글을 따라 걸어가 보렵니다. 김기림시인의 <길>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길 – 김기림
나의 소년시절은 은(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喪輿)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빛에 호져, 때없이 그 길을 넘어 강(江)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북 자주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댕겨갔다. 가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덕과 그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지를 모른다는 마을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애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준다.
사진, 문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