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8.28 조경숙 <밥꽃 피어날 때>
빛을 흡수하는 너비가 큰 검정원피스를 입고 걷노라니, 등에 닿는 열기가 마치, 벼 들판에 벼 이삭을 생각나게 했지요. 입추의 문이 열리고, 아침저녁으로 암암리에 스며드는 차가운 기운들이 있다 해도 여전히 여름이 곡하는 한낮의 더위등살. 그 위에 쑥쑥 올라온 벼 이삭의 벼꽃들 소식을 알려주는 지인들 덕분에, 올해도 벼꽃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제 텃밭 앞 논에서 피어난 벼꽃을 사진으로 보내주기도 하고, 펜화로 더 생생하게 그려 보내주기도 하고요. 얼마 전 읽었던 벼꽃에 대한 시도 생각나기도 했지요. 동시에 그 꽃이 없었더라면 함께 밥상머리에서 마주 할 사람과 사는 얘기도 없었겠지 싶은 맘도 들고요.
올해도 텃밭에서 이런저런 작물들의 결실을 먹고 나누는데요. 모두가 꽃을 먹고 있었던 셈이지요. 오이꽃, 호박꽃, 감자꽃, 가지꽃, 고추꽃, 옥수수꽃, 토마토꽃, 들깨꽃, 벼꽃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많은 꽃을 먹고 있으니, 얼마나 더 예뻐질까요. 하하하~~~
새벽 일찍 눈이 떠져서, 에세이 몇 편 읽다가, 주말에 열리는 2025년 군산 북 박람회가 생각나더군요. 기억하실 분 계시겠지만, 작년에 처음 열렸던 박람회가 의외로 사람들이 많이 찾아주어서 대 성공을 이뤘다고 평을 받는데요. 그래서 이번에는 부스의 수도 늘려서 타지에서 120여 개, 군산에서 책방이나, 출판물 관련 업을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참여하도록 행사를 주관한다는 군산시... 그런데, 웬일인지, 참여자인 책방주인들은 특별한 준비사항이 없는 듯 고요하기만 하군요. 아마도 알아서 준비하려니 하나 봐요.
저도 부스하나 받아서, 책방에서 전시하던 책 들고나가고요. 특별히, ‘근대시인의 시 책방’이라는 제목을 정하고, 관련 책을 판매대에 올려놓을 예정입니다. 함께 공부하는 제 문우들은 저만큼 책을 많이 가지고 계실 테니, 타지에서 오는 분들을 위해 소량으로 준비할 예정입니다. 작년에 보니, 의외로 젊은 청년들이 근대시인의 이름을 알고 있어서 놀랍기도 하고 대견했지요.
군산시에서는 군산책방코너에서 책을 사면 작은 기념품을 준다는데, 그게 무엇인지, 저도 아직 모를 정도로 고요와 평화. 하지만 저는 제 책방에 오시면 폴라로이드 사진기로 즉석사진을 찍어서 현장체험의 순간을 추억하시라고 드릴예정입니다. 딸이 필름과 사진기를 내어주네요. 요즘은 핸드폰 속에 잠자고 있는 사진들만 있어서, 실제 인화사진을 가지는 것도 다 수고가 필요한 세상이니까요.^^
하여튼 기억해 주세요. 2025년 제2회 군산 북박람회가 8.30(토)-8.31(일), 군산 시민문화회관(나운동 소재)에서 열려요. 아침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입니다. 전국의 유명한 책방과 출판사가 대거 등장하고요, 문학평론가들, 국내외 작가들과 함께하는 스냅시간도 볼만하고요. 드론으로 상공으로 보면 아마도 휘황 찬란한 북 세상이 펼쳐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어떤 행사든 사람이 주인이니, 관심 가지고 많이 오셔서 좋은 책과 기념품들 구경하세요. 오늘부터 며칠간 홍보할게요~~ 오늘은 9월에 출간될 조경숙 시인의 시집을 미리 읽어볼 기회가 있었는데요, 밥꽃에 대한 시가 있더군요. 신작 시 <밥꽃 피어날 때>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밥꽃 피어날 때 – 조경숙
아무도 모르게 일어 났어요
소리없이 눈을 떴어요
벼이삭 패고 밥꽃피면 햅쌀밥 먹는
세상에서 가징 귀하고 맛있는 꽃
세상에서 가장 짧게 피었다
사라지는 꽃이 하늘과 땅에
사르르 가슴을 열어요
밥 굶지 말고 가족을 지켜주는
든든한 버팀목 되라
농사에 진심인 귀한 농사꾼 되라
이름 지어진 믿음직한 미화 이모는
방실거리는 넘애기 등에 업고
아침 저녁 새 보러 나가더니
고달픈 양심의 짐을 겸허하게 지고
삼십 고개에 한 번뿐인 삶을
기막히게 내려 놓았어요
얼핏 내민 벼꽃 속살을 보면
순정 싱그러이 비단 깔아주는데
어쩌자고 풋사랑에 빠져 아서라
못 살겠다 한번 피지도 못한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벼꽃같이 이승을 떠났는지
깊은 한이 흔적 없이 나부낍니다
땀구슬도 여무는 8월 한 때
뉴턴의 법칙인양 눈뜨자마자 떨어지는
하루살이 나락 꽃같은 미화 이모
반백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슬픈 이야기는 우리동네
밥꽃 전설로 내려오는데
만가실이 오면 대식구 밥을 지어 먹이던
이모의 목숨같은 쌀독을 채우고
무서리가 내리면 가을걷이 끝난 논은
이삭 줍는 새들이 생의 고리를 엮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