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9.19 안상학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안상학 시인의 시집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에는 쓰여있는 표사의 일부를 보면 그가 누구인지 조금은 알 듯도 했습니다.
-안상학의 시적 거점은 안동이다. 그런데 영남학파의 근거지로 자자한 육사의 안동이 아니다. 가난한 성자 권정생에 봉헌된 <빌뱅이 언덕 권정생>이 가리키듯, 안상학의 안동은 민중의 피와 땀이 임리淋漓한 소수자 안동이다. / 안상학은 돈오頓悟의 시인이다. 점수漸修가 부족하다. 고통을 먹이로 시를 생산하는 악마의 발생학을 여의고 이젠 정혜쌍수定慧雙修로 정진할 일이다.-
직접 만나서 시인의 얘기를 듣지 않았더라면 이 어려운 말로 쓰인 표사의 의미를 결코 알지 못했을 거예요. 마치 하늘에서 ‘넌 시인이 되어야 한다...’라고 운명 지어준 것처럼, 시인에게 있었던 생사의 경계선마다 꽃이 피어있었습니다. (함민복 시인의 표현을 빌어서) 촉촉하고 가슴 뭉클한 강연이었습니다.
전주인문학 마당에서 올해 10명의 시인을 초빙하여, <천년전주 시와 연애하다>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평소에 만나보고 싶었던 시인들의 얘기를 대거 획득하는 즐거운 시간입니다. 학원의 수업시간과 겹치지 않고 다녀오노라면, 엄청 부지런하게 계획표를 짜야하지요. 그 분주한 제 마음을 어느 한분도 서운하게 해 준 시인이 없지만, 어제는 유독 이 시간들이 고맙고 애잔한 느낌이었습니다.
안상학 시인의 키워드는 ‘사랑, 슬픔, 희망 그리고 시’라는 톱니들의 궁합이 순환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왜 살다 보면 무엇이든 한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는 것이 삶인데요, 시인은 생사에 놓은 수많은 디딤돌 조각들을 ‘시’라는 매체로 둥글게 둥글게 연결시켜 줍니다.
-그 무슨 일이 있어도 희망을 버리지 말게요. <청포도> <광야> 시인, 이육사의 희망, <강아지똥> <몽실언니>를 쓴 권정생작가의 희망은 오늘 희망이요, 내일의 희망이니... 결코 사라지지 않을 우리들의 영원한 진리입니다 -
특히 다음 주부터 시작될 온택트 3기 수업의 첫 번째 주자가 근대시인 ’ 이육사‘여서 귀를 더 쫑긋하고 들었답니다. 우리가 이육사를 안동시인이라고 제한하지 않는 것처럼 안상학 시인의 시 세계를 지역 안동으로 묶어두려 했던 저의 오류에 반성이 일었네요. 제가 이렇게 아는 것이 편협되고 편식을 일삼고 있으니, 더 귀를 열고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시인의 시집 그 어떤 것이라도 일독해보시길 강추합니다. 오늘도 안상학 시인의 시 한 편 올리지요. 부드럽지만 그리움과 애잔함이 가득한 시어를 통해 나오는 사랑과 슬픔의 톱니바퀴, 함께 굴려보시게요.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 안상학
그때 나는 그 사람을 기다렸어야 했네
노루가 고개를 넘어갈 때 잠시 돌아보듯
꼭 그만큼이라도 거기 서서 기다렸어야 했네
그 때가 밤이었다면 새벽을 기다렸어야 했네
그 시절이 겨울이었다면 봄을 기다렸어야 했네
연어를 기다리는 곰처럼
낙엽이 다 지길 기다려 둥지를 트는 까치처럼
그 사람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어야 했네
해가 진다고 서쪽 벌판 너머로 달려가지 말았어야 했네
새벽이 멀다고 동쪽 강을 건너가지 말았어야 했네
밤을 기다려 향기를 머금는 연꽃처럼
봄을 기다려 자리를 펴는 민들레처럼
그 때 그 곳에서 뿌리 내린 듯 기다렸어야 했네
어둠 속을 쏘다니지 말았어야 했네
그 사람을 찾아 눈 내리는 들판을
헤매 다니지 말았어야 했네
그 사람이 아침처럼 왔을 때 나는 거기 없었네
그 사람이 봄처럼 돌아왔을 때 나는 거기 없었네
아무리 급해도 내일로 갈 수 없고
아무리 미련이 남아도 어제로 돌아갈 수 없네
시간이 가고 오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네
계절이 오고 가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네
그때 나는 거기 서서 그 사람을 기다렸어야 했네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처음 만났을때, 영화배우 로버트레드포드를 닮았었다고 말씀한 교수님에게 공감표 1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