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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봄날 아침편지 211

2025.11.15 최진석 <고요에 들라>

by 박모니카

장다리 11월의 문을 빼꼼히 열어보니 기다림의 얼굴들이 많이 있네요. 저의 바쁜 일상만 들추며 편지를 쓰는 것 같아, 조금 염치가 없었는데, 책방 책상 위에 다른 문우들이 쓰신 동인지 한 권이 있어서 읽어보았습니다. 표지부터가 따사로운 노을빛으로 물든 군산의 동백대교의 모습입니다.

저는 군산의 문인들이 모이는 다양한 협회에 소속되어 있진 않지만, 그분들의 문학활동에 누구보다도 응원하고, 엄지 척하지요. 어쩌면 정회원보다 더 으뜸으로 찬사의 마음을 보낼지도 몰라요. 이번에 책을 주신문학단체 <나루>는 여성 문인들의 전문문학지예요. 2025년에 스물일곱 번째 작품집이 나왔는데요, 80여 편의 다양한 문학장르(시, 수필, 소설)가 수록되어 있어요. 아름답고 맛난 결실을 맛볼 수 있게 해 주시네요. 새해에도 더욱더 단단하고 아름다운 문학인들의 모임이 되길 기원합니다.


오늘은 새벽부터 정말 바쁜 날... 집안의 큰 행사가 있기도 하고요. 온택트 수업을 포함한 여러 할 일들이 줄줄이 사탕으로 엮어져 있군요. 이러다가 단풍구경, 은행구경 한번 못하고 이 계절을 보낼 듯하여 마음이 씁쓸하지요. 게다가, 매일매일, 새 집 청소와 정리도 해야 하고요. 바쁨의 모서리가 닳아질 때까지, 어디 누가 이기나 하는 맘으로 살고 있답니다.^^


요즘 며칠 읽고 있는 책 중에, 김미옥 작가의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라는 책이 있는데요. 스스로 ‘활자중독자’ ‘독서선동가’라고 칭할 만큼 대단한 독서량과 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말합니다. -나를 살게 한 것은 읽기였고, 생존의 이유가 된 것은 쓰기였다.-라고요.


70여 편이 넘는 작가의 글 속에는 같은 수만큼의 또 다른 책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정말 독자들에게 독서를 선동하는 지극히 맹렬한 선동가 같습니다. 하루 정도 여유로운 시간이 있다면, 저도 한 번에 다 읽어 버리고 싶을 만큼 짜릿한 문체도 참 매력적입니다. 제목대로 ‘각으로 쓴다’라는 느낌이 확 들어서 지인들에게 독서강추를 하고 있네요...


누가 뭐래도 가을은 독서하기 좋은 날. 특히 중년의 나이에 들어선 당신이라면 얼마나 많은 사연이 있으리이까. 읽고 한 줄 써보고, 또 읽고 또 한 줄 써보는 손놀림만으로도 행복이 그곳에 있습니다. 오늘은 토요일... 바쁨 속에 고요의 정수리를 잘 잡고 마음을 모아서, 한 줄짜리 라도, 글 쓰는 날을 만들어 볼까 합니다. 최진석 시인의 <고요에 들라>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고요에 들라 - 최진석


해가 뜨는 것은 고요를 깨는 것이고

해가 지는 것은 고요 속에 드는 것이라 말하지 마라.

뜨는 해에다 자신을 맡기지 않고 지는 해에도 자신을 맡기지 않고

뜨는 해와 지는 해를 모두 편견 없이 대하는 것이 고요다.

걷는 것은 고요를 깨는 것이고

가만히 앉는 것이 고요라 말하지 마라

걷는 것과 앉는 것을 평등하게 대하는 것이 고요다.


사랑은 고요를 깨는 것이고

이별은 고요에 드는 것이라 말하지 마라.

사랑하다 이별하고 이별한 사람이 새 사랑을 시작하는 것을 원래 그런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 고요다.


밤이 와서 고요에 드는 것이 아니다.

부산한 하루를 떠나보내는 것이 고요가 아니다.

밤이 지나면 낮이 오고,

낮이 지나면 밤이 오는 것,

왕복이나 순환 그 자체가 고요다.


날던 새가 나뭇가지에 앉아 다리를 접어 쉬고

접은 다리를 펴서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다시 나는 것 자체가 고요다.

날면서는 다리를 접고 쉬던 일을 잊지 않고

다리를 접고 쉬면서 날 일을 비밀스레 꿈꾸는 일이

고요다.


생과 사가 하나이고,

선과 악이 하나이고,

동과 이가 하나이고,

애와 증이 하나이고

미와 추가 하나이고

앞과 뒤가 하나이고

과거와 미래가 하나이고

너와 내가 하나이다.


하나가 고요다.

둘로 쪼개지는 소리에 고요도 깨진다.


고요에 들면 너는 너로 있고,

둘로 쪼개지면 네게 너 아닌 것이 침투한다.


고요에 들어야 보인다.

보여야 관찰할 수 있다.

관찰해야 보여지는 대로 볼 수 있다.

보여지는 대로 봐야

이익이 크다.


고요하면

네 안에 든 너 아닌 것에

주인 자리를 뺏기지 않는다.

네 안의 너 아닌 것에

휘둘리지 않는다.


네가 너로 존재하면

그것이 고요다.

네가 너의 주인이면

그것이 고요다.

고요하면

세상이 다 네게로 온다.


오직 고요에 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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