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14 고은 <삶>
올해는 고3학생이 없어서 수능날인 어제의 무게를 깜박했답니다. 혹시라도 고3수능생 자녀분이 있었다면 올 한 해 고생하셨다는 위로의 말씀과 함께 분명 기쁜 일이 있을 거라는 희망의 메시지도 드립니다.
장갑 들고 떡과 과일을 싸서 아침 일찍 달려온 후배님. 난장판 이삿짐을 하나라도 거들어준다는 그녀의 마음에 감동했습니다. 역시 내 후배답다. 실천력 강한 그 마음, 잊지 않으리다... 다짐했네요. 사실, 짐정리하면서 핑계김에 아줌마들 폭풍수다가 더 재미있지요. 아무리 오래 만났어도, 이런 일로 수다 떠는 시간이 몇 번이나 있을까요.^^
꽃무릇 100 포기를 주신다는 선배님 말씀에 또 감동했습니다. 남편지인이 맥문동 풀떼기(?)만 왕창 심어놓아서 짜증이 난다 했을 때도, 겨울에도 강하고, 내년 여름을 빛나게 해 줄 테니 걱정 말라했던 말씀 기억합니다. 그런데 또 붉은 꽃무릇을 주신다니요. 이 고마움을 어찌 다 갚으오리까.
이삿짐 싸면서 “당신 배 많이 나와서 못 입으니까 다 재활용에 넘길 거예요.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필요할 때 다 사 입으십시다.”라는 협박과 함께 옷이란 옷은 거의 정리했는데... 그런데 주말에 친척 결혼식이 떡 하니 있네요. 기분 좋게 비상금 털어서 양복 한 벌(결코 비싼 옷 살리 없는 모니카의 본심을 눈치채고) 사주었답니다. 그러면서 생각했지요. ‘엄청 short 다리고만’
하루를 되돌아보면 이야기 없는 삶이 없습니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최고의 기쁨이요 행복이지요.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때맞춰 나태주 시인의 시 한 편이 떡 하니 있네요.
-하늘 아래 내가 받은 / 가장 커다란 선물은 / 오늘입니다 // 오늘 받은 선물 가운데서도 /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 당신입니다 //(후략) -
글 한편 읽고 이 사람 저 사람을 떠올려보니, 제가 받은 선물이 얼마나 많은지, 품에 다 안을 수가 없을 지경이네요. 오늘은 제가 그분들의 선물이 되고 싶은 날입니다. 고은 시인의 <삶>을 읽으며 마음에 텅 빈 충만을 채우는 금요일을 만들고 싶군요. 봄날의 산책 모니카.
삶 - 고은
비록 우리가 가진 것이 없더라도
바람 한 점 없이
지는 나무 잎새를 바라볼 일이다
또한 바람이 일어나서
흐득흐득 지는 잎새를 바라볼 일이다
우리가 아는 것이 없더라도
물이 왔다가 가는
저 오랜 썰물 때에 남아 있을 일이다
젊은 아내여
여기서 사는 동안
우리가 무엇을 가지며 무엇을 안다고 하겠는가
다만 잎새가 지고 물이 왔다가 갈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