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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봄날 아침편지 214

2025.11.18 신철규 <11월>

by 박모니카

떨어지는 낙엽들을 보면서, ‘아! 가을인가~~’라는 노래 한 소절과 차 한잔이 따라오는 감성은 우반구에, ‘아고야, 11월까지 치러야 할 행사가 몇 건이야? 할 일이 태산이네’라는 이성은 좌반구에. 제 머릿속 좌우반구는 오늘도 씽씽 소리를 내며 돌아갑니다. 이 글을 쓰는 순간조차도 덜커덕거리는 기계의 작동소리가 난다면?? 감성을 짓누르는 이성의 기제가 저를 대신하는 거겠죠... 하지만 어제 본 책방 옆 카페의 은행나무를 생각하며, 오늘은 그곳에 가서 꼭 커피와 달콤한 케이크 하나 먹어야지, 달달하게 당 보충해야지.라는 바램이 술렁거리네요.


금주 토요일에는 ‘봄날의 산책 디카시 시상식’, 다음 주엔 ‘말랭이마을 시인탄생이야기 에세이 출간잔치’, ‘말랭이 마을 골목잔치’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특강’ ‘신인 에세이스트 출간회’를 줄줄이 주관해야 합니다. 이중 말랭이 마을 어머님들과 제가 가장 기다리는 것은 당연히 저의 에세이입니다. 당신들의 이름이 책 표지에 실렸으니, 더욱더 기쁘고 자랑스럽다고 합니다.


시인이 되고 싶은 어머님 10명과 글방지도를 한 선생님 2명, 그리고 저만 모여서 자축하는 자리를 만들지요. 말랭이 어머님들 이야기로는 두 번째 에세이인데요. 이번에도 또 인터뷰를 통해, 최근 이야기와 특히 글방공부 하는 당신들의 심정을 시와 함께 실었습니다. 내년에는 한글 공부를 더 하고 싶다고 말씀하는 속내에는 아마도 ‘개인 시집’을 염두에 두지 않을까요. 그래서 제가 또 다른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90세를 맞이하는 방자어머니를 중심으로 글이 주는 엄청난 삶의 에너지를 안겨드리고 싶습니다.


매일 하루에 한 가지씩, 이삿짐 정리... 어제는 인터넷 설치를 했고요. 또 버리기 연습도 하고요. 열심히 정리하고 있는데, 지나가시던 말랭이 어머님들이 저를 보신 거예요.


“작가님, 우리 동네로 이사 왔다고 들었는데, 정말이네. 잘했어 잘했어. 주택에 사는 것이 좋아. 더 오래 만나겄네.”

“가까이 왔으니, 더 재밌게 공부해 보시게요. 내년에 무엇을 하고 싶으신지 생각해 두세요.”


낙엽이 왜 떨어지겠어요. 나무가 왜 벗어던지겠어요. 다 이유가 있겠지요. 결코 인자하지 않은 자연이 사람에게 베푸는 무한한 인자함을 남편은 알고 있는 듯, 감나무에서 떨어지는 넓은 감나무 잎을 열심히 쓸어 담더군요. 아마도 머릿속으로는 멋진 시 한 수 쓰고 있는지도 모르고요.

신철규시인의 <11월>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11월 – 신철규

같은 숫자가 나란히 서 있다


햇살이 유리창을 뚫고 사선으로 비친다

너의 왼뺨에 난 솜털이 하늘거리고

오른뺨은 그들로 선명해진다

나는 조금 더 햇볕 쪽으로 다가앉는다


첫눈 오면 뭐 할 거야


그것이 사랑의 속삭임인지 이별의 선언인지 헷갈려서 심장이 아래로 한 치쯤 내려앉는다

몸속의 저울추가 무거워진다

파동처럼 흐르던 마음이 입자가 되어 흩어진다

실내엔 아지랑이처럼 음악이 피어오른다

고요하던 실내에 음악이 커지면 실내는 그만큼 무거워질까

소리에도 무게가 있을까

흘러간 시간들은 어디에 쌓이는 걸까

그거 알아? 열대지방에도 단풍이 든다. 건기때 낙엽이 지는데 추위 때문이 아니라 공기가 건조해져서래

나무는 몸 안에 깃든 물을 가두기 위해 나뭇잎을 떨어뜨린다

두 그루 나무 사이에 낀 태양

나뭇가지들이 만든 가시 족쇄

버림받은 빛

컵을 놓친 손바닥의 새하얀 현기증

손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먼 미래에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거울 속에 들어 있는 환영을 손바닥으로 만져보듯이

거울 속으로 무섭게 달려드는 눈동자들

입술이 지워진 얼굴들


칼끝이 뾰족한 것은 무언가 찌를 것이 있기 때문이다

뭉툭한 마음은 찌를 곳도 없이 무너진다

너의 입술에 나비가 앉아 있다

잡으려고 손을 뻗자 사라지는


갈변한 마음들을 하나씩 떼어낸다

나는 텅 빈 나무처럼 고개를 숙여 바닥을 본다.


털실로 만든 새는 노래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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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근처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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