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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봄날 아침편지 213

2025.11.17 김금용 <은행나무 사랑>

by 박모니카

은행나무 단풍모습을 만끽하고 싶을 때 서원이나 향교를 찾는데요. 왜 이런 곳에는 은행나무가 많을까요. 공자가 노나라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 선성묘(先聖廟) 행단(杏壇)이었다고 해요. 질그릇 조각과 벽돌로 빙 둘러가면서 단을 쌓고 주위에 은행나무를 심은 곳이 행단이래요. 향교를 보면 은행나무를 심고, 배움과 지혜의 단을 쌓았을 학동들의 모습이 떠오르지요.


어제 익산을 다녀오던 중, 잠시 임피향교길을 지나가다가 은행나무가 생각나서 들렀어요. 딱 맞은 때에 딱 맞은 발걸음이었던지 우수수 떨어지며 땅에 착지하는 수많은 노란 은행잎들...마치 한복자락 나풀거리며 향교를 거닐던 그들의 웃음소리처럼 들려왔습니다. 제향공간인 대성전 앞 뜰과 강학공간을 품어주는 정문 앞에 있는 은행나무들은 풍경사진 찍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인기장소이기도 해요.

동양의 은행나무가 서양의 철학자 괴테에게 사랑의 다리가 되었다는 얘기를 읽었는데요.

당시 독일에 은행나무가 없었는데 대문호이자 식물분류학자였던 괴테가 동양서적을 읽던 중 은행나무를 발견했고, 그가 마리아네라는 여인과 열애 중이었다네요. 그녀에게 보내는 편지에 은행나무 이파리를 그려 넣고, “은행나무 이파리 끝은 비록 갈라져 있지만 한 장이듯이 당신과 나 역시 둘이면서 하나지요.”라는 러브레터로 60대 노년의 괴테는 젊고 아름다운 마리아네를 연인으로 얻었다고 합니다.(안도현의 ‘은행나무’ 중)

비단 가을 단풍 들 때가 아니더라도 향교는 가고 싶은 편안한 곳 중의 하나인데요. 어제 임피향교는 저의 그 마음을 알고 멀고 먼 옛 학인들이 미리 나와 넓은 옷자락 품을 내어주며 반겨주었답니다. 아주 가까운 곳에 있으니, 점심 드시고 산책 한번 다녀오세요. 오늘 낼부터 기온이 뚝 뚝 하강한다고 하니, 은행잎도 뚝뚝뚝 떨어져 향교계단을 옐로우 카펫으로 다 덮을 거예요. 누가 뭐래도 은행잎이 달려 있는 은행나무가 가장 호쾌하고, 향교풍경은 역시 은행잎이 수북한 가을 향교가 가장 아름다워요.

김금용시인의 <은행나무 사랑>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은행나무 사랑 - 김금용

물밑 혼돈이 짙어질수록 황금빛으로

깊게 타오르는 당신을 바라봅니다

말을 아끼는 당신의 시선과

담 너머 마주 보고 선 또 하나

반 쪽 사랑을 향해

제 안에서 닳아진 엽록소 푸른 멍으로

명치 아래 숨겨둔 고통의 핵 하나

밤새도록 끌어올리는 당신의 노동을

오래도록 멈춰 서서 지켜봅니다

차갑게 굳어 가는 어둠의 중심, 그 한가운데

아직 촛불 한 가닥 남아

손사래 치며 사라지는 계절 속에서도

하루하루를 기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밤길 밝혀주는 별이 된다는 것을,

몇 점 희망 간직하는 사람들

꿈속으로 불 밝히며 스며든다는 것을,

비어 가는 늦가을 숲에 여전히 자리 지키고 선

당신의 숨소리에 귀 기울입니다

까무룩하게 기울어져가는 11월의 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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