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9 나희덕 <배추의 마음>
모두들 김장하셨지요. 평생 동안 친정엄마가 해주신 김장을 먹고살았는데요. 올해는 제가 무슨 변덕이었던지 김장을 안 해도 된다고 말씀드렸죠. 사실 해마다 김치통 서너 통을 가져와도 매일 외식 탓에 한겨울이 지나도록 한 통도 먹지 못하고 늘 다른 사람의 차지로 돌아갔답니다. 그래서 굳이 김장까지야... 하면서 지나가던 중, 자원봉사를 함께 하시는 분께서 배추밭 배추 뽑아서 김장을 한다길래, 또 변덕을 부려, 제 것도 해주시면 살게요라고 했지요.
어제 아침, 김장을 하는데 도와달라는 말씀에, 갔다가, 4시간이 넘는 자원봉사(?)에 완전 넉다운 했답니다. 친정엄마하고 김장할 때는 남동생들이 나서서, 배추 한 포기도 안 들고 날름 받아만 먹었는데, 왠 걸, 돈을 주고 사 먹는 처지인데도, 이렇게 일을 하게 될 줄이야... 모 회사에서 장애인 단체에게 후원한 배추까지 김장하는 현장이었음을 모르고 간 제 탓이요 했답니다.^^
하지만, 속이 꽉 찬 배추에, 건강한 양념으로만 버무려지는 배추를 보면서 생각했지요. 올해도 책방 핑계 대고 자원봉사에 게으름 폈더니, 용케도 잘 걸렸구나 싶은 맘을 얼른 돌려서 즐겁게 하자. 80세 이모님들도 나와서 하시고, 배추에 양념 묻혀, 삼겹살 수육까지 주시는데 양심상 열심히 해야지 하며, 정말 열심히 김치를 담았답니다.
덕분에, 배추김치 말고도, 무김치도 좀 나눠주시고, 남은 생 배추도 주셔서 받아왔네요. 조만간 지인들과 쌈배추 점심이나 한 끼 해 먹을까 하고요. 하지만 너무도 힘들어서 수업 전에 잠들었는데, 꿈속에서 어떤 분이 시낭송을 멋들어지게 하는 모습에 감동해서 잠이 깼답니다. 다름 아닌 오늘 있을 ’ 한국 시낭송 문화 군산예술원‘ 회원들의 시낭송 송년 대잔치를 미리 꿈속에서 만났나 봐요.
군산에서 가장 멋지게, 실력 있게, 다채롭게, 원작시의 감성을 가장 독보적으로 표현하는 시낭송팀입니다. 부족한 제가 행사의 사회를 맡는 영광도 있고요. 악기공연과 먹거리 나눔도 있어요. 무엇보다 20편의 한국시를 낭송하는 낭송가들 덕분에 혹여나 있었을 우리들의 혼탁한 마음이 순식간에 확 사라질 거예요. 다음 포스터 보시고 송년마무리에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발걸음 한번 해보시길 강추합니다. 나희덕시인의 <배추의 마음>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배추의 마음 - 나희덕
배추에게도 마음이 있나 보다
씨앗 뿌리고 농약 없이 키우려니
하도 자라지 않아
가을이 되어도 헛일일 것 같더니
여름내 밭둑 지나며 잊지 않았던 말
- 나는 너희로 하여 기쁠 것 같아
- 잘 자라 기쁠 것 같아
늦가을 배추포기 묶어주며 보니
그래도 튼실하게 자라 속이 꽤 찼다
- 혹시 배추벌레 한 마리
이 속에 갇혀 나오지 못하면 어떡하지?
꼭 동여매지도 못하는 사람 마음이나
배추벌레에게 반 넘어 먹히고도
속은 점점 순결한 잎으로 차오르는
배추의 마음이 뭐가 다를까
배추 풀물이 사람 소매에도 들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