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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봄날 아침편지 236

2025.12.10 이근배 <겨울행>

by 박모니카

’ 당신 얼른 일어나서 편지 쓰소.‘라는 말이 들려와도 ’ 아고 나도 모르겄다. 7시가 넘으면 어떤가. 찡찡거리는 허리, 뜨거운 방바닥에서 지지고 천천히 쓰면 되지.‘라고 생각하다고 늦잠을 잤네요. 어제도 단체 행사가 있어서 마음 쓰는 일을 했더니만 피곤이 녹아들었나 봐요.


제가 속한 시낭송단체의 송년잔치가 있어서, 우리 회원님들의 아름다운 낭송현장에서 함께 호흡했는데요. 언제 들어도 맛있게 시를 버무리는 낭송솜씨는 참으로 존경스럽기만 합니다. 한국시낭송문화 군산예술원(회장, 채영숙) 회원 여러분, 올해도 정말 멋진 삶이었습니다.


새 책방을 찾는 사람들의 말씀 중 가장 좋은 말... ’ 편안하네 ‘라는 말이 아직 제게는 소용되지 못하고 있는 듯. 2층의 살림살이 정리가 남아있어서 여전히 두 집 살이를 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방문객처럼 책방을 들어서면, 제 눈에도 ’ 편안해 보이네 ‘라는 말이 생각나긴 하죠. 게다가 주인보다 더 주인인 벗들의 따뜻한 손길이 매일매일 책방을 포근하게 만들어 주고 있어서 얼마나 고마운지요.


제 머릿속에는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이 두서없이 쌓여 있는데요. 아까운 12월이 다 가기 전에 묵직한 짐 한 두 개는 풀어놔야겠어요. 그중 하나가 군산지역작가들의 이름과 작품을 리스트업 하는 일과 새해 ’ 작가와의 만남시리즈‘를 기획하는 일이죠. 저는 늘 말하죠. 삶의 중심에 ’ 자신‘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군산의 문인활동에서 ’ 군산 작가들과의 만남‘을 지속적으로 노출시키는 일은 군산 책방들이 꼭 해야 할 활동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가까운 사람들이 작가라고 하면 가볍게 지나치는 경우의 수가 많은데요. 작품을 통해서 사람을 다시 알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작가 역시 글을 태도와 생각이 달라질 거라 믿습니다.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봄날의 산책에서부터 시작되도록 노력해 볼게요.


오늘은 어떤 분께서 엔틱 한 의자를 선물로 주신다네요.. 후다닥 달려가 받아와서 책방에 놓으면 책방매니저가 알아서 제 자리를 찾아주겠지요. 책방에 어떤 물건이 들어오면 저는 이렇게 말하는데요, 아마도 핑계도 가지가지라고 생각할 거예요... ’ 너는 진짜 감각이 짱이다. 나는 이렇게 꾸밀 줄을 몰라. 너의 손길이 필요해...‘라고요.^^ 오늘은 어제 낭송하신 김수현 낭송가님이 들려주신 이근배시인의 <겨울행>을 다시 한번 들어보세요. 참고로 낭송가님의 순수하고 아리따운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겨울행 -이근배


1

대낮의 풍설은 나를 취하게 한다

나는 정처 없다

산이거나 들이거나 나는 비틀걸음으로 떠다닌다

쏟아지는 눈발이 앞을 가린다

눈발 속에서 초가집 한 채가 떠오른다

아궁이 앞에서 생솔을

때시는 어머니


2

어머니

눈이 많이 내린 이 겨울

나는 고향엘 가고 싶습니다

그곳에 가서 다시 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여름날 당신의 적삼에 배이던 땀과

등잔불을 끈 어둠 속에서 당신의 얼굴을 타고 내리던

그 눈물을 보고 싶습니다

나는 술 취한 듯 눈길을 갑니다

설해목 쓰러진 자리 생솔 가지를 꺾던 눈밭의

당신의 언발이 짚어가던 발자국이 남은

그 땅을 찾아서 갑니다

헌 누더기 옷으로도 추위를 못 가리시던 어머니

연기 속에 눈 못 뜨고 때시던 생솔의, 타는 불꽃의, 저녁나절의

모습이 자꾸 떠올려지는

눈이 많이 내린 이 겨울

나는 자꾸 취해서 비틀거립니다.

12.10책방1.jpg
12.10책방4.jpg 한국시낭송문화군산예술원회원일동 '올해도 여러분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12.10책방3.jpg 이근배시인의 <겨울행>을 낭송하신 김수현낭송가.. 한복자태가 곱지요~~
12.10책방2.jpg 오프닝공연, 서아프리카 전통타악기 젬배맞장구 단원들의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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