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봄날 아침편지 243

2025.12.17 이용악 <그리움>

by 박모니카

“유산 많이 받아야 겄어. 이렇게 맨날 목욕탕 함께 다니는 효녀딸잉게.”

“아고, 이모님, 그런 말씀은... 제가 사우나를 좋아해서 오는 거예요. 그리고 저는 이미 유산 다 받았어요.”

“벌써? 하긴 엄마 연세가 있으니까 다 나눴구나. 많이 받았어?”

“저를 동생들보다 공부도 많이 시켜주시고 결혼도 하고요, 진작에 다 받았지요.”


어제 새벽 엄마와의 목욕동행에서 있었던 대화입니다. 이렇게 대답한 저를 보고 엄마도 맘이 편하셨는지, 그때부터 ‘울 딸은 바빠서 죽을 시간도 없는디, 이렇게 온다.’느니 하며 길게 말씀하시더군요.^^ 사실입니다. 제가 무엇을 더 바랄까요. 바란다면 도둑 중 상 도둑이지요. 적어도 배운자가 물욕을 두고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것이 제 본능입니다. 물론 현실에서 재화의 가치를 더 유용하게 쓰고 싶어하는 욕심은 있지만요.


아침부터 즐거운 대화가 오고 가서 그런지, 연달아 복된 만남이 많았습니다. 바로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이었는데요. 작은 책방하나가 기쁨의 샘이 되기도 하고 위로의 샘이 되기도 하는 순간들을 바라보는 저는 참 행복했습니다. 후배는 사랑 'LOVE' 글자를 새긴 선인장뜨개질을 해오고, 친구는 고구마를 굽고 커피를 내려오고요. 늦은 오후에는 예고없이 멀리서 시인과 소설가가 오셔서 새 책방에 군고구마보다 더 달콤하고 노릇노릇한 향기를 가득 채워주고 가셨지요. 그분들의 발걸음에 얼마나 마음이 따뜻해지고 고마웠던지, 또 웅크리고 있던 상심이 한 순간에 어디로 숨었는지 보이지 않았죠.


저는 감정유리면이 얇아서 그런지, 얼굴만 보고도 우리 학생들이 물어보데요.

‘원장님, 뭐 기분 좋은 일 있으세요?’ ‘응,,, 왜?’ ‘어제보다 목소리가 밝아서요.’

오래 만나는 학생들이다 보니, 감정 포착에 보통내기들이 아닌 줄 다시 한번 알았네요.


시인과 시를 좋아하면 가난하다는 누군가의 말...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바로 여기에...라는 말로 되돌려주고 싶군요.


책방에 황금물질이 넘치진 못할지라도 맑고 푸른 시인들과 작가들의 글이 넘치고 있으니, 아마도 저는 가장 많은 유산을 받은 것이 분명합니다. 봄날의 산책에 오시면 책방지기의 넘쳐흐르는 다정함과 호탕함, 그리고 겨울산 넘어 서 있을 봄날을 향한 그리움을 모두 드릴 터... 분명 오늘도 누군가가 오시겠지요.

이용악시인의 <그리움>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그리움 - 이용악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

백무선 철길 위에

느릿느릿 밤새어 달리는

화물차의 검은 지붕에


연 달린 산과 산 사이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12.17그리움1.jpg
12.17그리움2.jpg


매거진의 이전글그리운 봄날 아침편지 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