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18 김언 <언제 한번 보자>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어느 곳에 있든 그곳에서 주인이 되면 서 있는 그 자리가 모두 진리의 자리’
임제선사를 찾아가 고맙다고 절 한번 올려야겠다 싶을 정도로, 저의 중심이 흔들릴 때 깊은 깨달음을 주는 말씀입니다. 머무는 곳마다 주인의식을 가지고 행동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데요. 그것도 한순간, 한 찰나를 헛되이 버리지 않으려는 마음을 지속하면서요.
새책방으로의 완전한 안착이 아직 미비한 가운데, 저는 옆 가게들과의 상생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근대역사거리의 다른 골목길은 상점들이 꽤 활발하게, 특히 시의 관심과 협조아래 잘 운영되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제가 자리한 골목은 오후 6시만 되어도 인적이 뚝, 가로등도 없어서 어둡고요.
기존상점주인들과 만나서, ‘우리도 바꿔봐요. 뭐 해달라고 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방문객들과 어떤 활동을 하면 좋은지, 실내에만 있지 말고 플리마켓 형태를 규칙적으로 열어볼까요... 등을 제안했더니, 엄청 좋아하시더군요.
책방주인장도 이슬만 먹고사는 매미가 아니라서 뭔가 대책이 필요하고, 혼자보다 함께 하면 더 좋을 테니까요. 춥다고 웅크리는 겨울방학 동안 고민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3월이 오기 전 책방골목(구영 1길)에 새 장을 펼쳐볼까 합니다. 뜻을 가지고,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맑아지는 이 아침!!
어제 오신 한 지인께서 말하길, “책방 옆과 뒤로 점집이 있는 것을 보면, 자기가 보통 기가 센 여자가 아니야. 이곳은 아무나 들어오기 힘든 곳인데, 하여튼 집이 참 좋다. 잘했네.”라며 격려해 주었어요. 이 동네는 예부터 무속신앙이 무리 지어 있을 수밖에 없던 환경이지요.
저의 응대는 이랬지요. “양쪽에서 자신들을 지켜달라고 하늘에 열심히 빌 테니 그 덕 같이 나눠질 거예요. 저는 성당에서 그분들을 위해 기도하면 되고요. ” 생각의 전환이 번개보다 빠른 모니카...^^
자신의 생각을 어디에 두고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하면서 제 형편을 남에게 핑계 대며 사는 건 참으로 창피하고 굴욕적인 일... 하루를 살아도 당당하게 살고 싶지요. 모든 것은 저의 의지, 판단, 소신이 결정하는 대로. 그러다가 힘들면, 그때대로 다 사는 법이 또 나타날지니, 그냥 하루하루 저에게 또는 누군가에게 '시간을 내는 일' 그것이 사는 것이며 인생인 듯싶어요. 오늘은 어젯밤 줌 시강독에 만난 김언 시인의 시집 <백지에게>의 가장 마지막 시, <언제 한번 보자>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언제 한번 보자 – 김언
삼월에는 사월이 되어 가는 사람. 사월에는 오월이 되어 가는 사람. 그러다가 유월을 맞이해서는 칠월까지 기다리는 사람. 팔월까지 내다보는 사람. 구월에도 시월에도 아직 오지 않은 십일월에도 매번 기다리다가 지나가는 사람. 우리가 언제 만날까? 이걸 기약하느라 한 해를 다 보내고서도 아직 남아 있는 한 달이 길다. 몹시도 길고 약속이 많다. 우리가 언제 만날까? 기다리는 사람은 계속 기다리고 지나가는 사람은 계속 지나간다. 해 넘어가기 전에 보자던 그 말을 해 넘어가고 나서 다시 본다. 날 따뜻해지면 보자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