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봄날 아침편지 250

2025.12.24 오장환 <성탄제>

by 박모니카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기다리는 크리스마스이브. 제 나이 사람들은 길거리의 캐럴송을 추억하고 싶겠지만, 다 시대에 따라 살아가는 법. 손 안의 핸드폰으로 자유롭게 음악을 듣고 흥얼거리네요. 대학교 때까지만 해도 가판대에 놓여있던 레코드, 주문하면 바로 튀어나왔던 음악다방... 다 보고 싶은 추억들입니다.


추억의 거리가 짧을수록 오랜 시간을 거쳐온 증거라 하는데요. 올해도 ‘벌써 벌써...’를 외치며 자꾸만 달력을 뚫어지게 바라봅니다. 하긴 그렇다고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요.^^ 학원에 세워 둔 트리 속에 하얀 쪽지 몇 개가 보여서, 누가 넣었는지 물어보니, 중1여학생들의 깜찍한 발상이더군요. ‘원장님은 500억이 생기면 뭐 하고 싶으세요?’ ‘설마 그 돈을 산타에게 달라고 기도한 건 아니겠지?’ 여학생들이라 그런지 웃음소리마저 루돌프 종소리 같이 낭랑합니다.


정말로 저에게 500억이 생긴다면, 아니, 저는 1억이라도 생긴다면? 무엇을 할까요.

학생들에게는 이렇게 대답하니, ‘우리 원장샘, 역시 멋져부러!!’ 라고 하네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도서관을 만들어서 너희들의 이름은 딴 작은 도서방을 포도알처럼 주렁주렁 열리게 하고 싶다. 그 돈으로 책도 다 사주고, 너희들 도서방에 와서 책 보는 사람들에게 간식도 주고. 그럴 때 혹시 선생님의 이름 하나 기억해 주면 최고지...”


학생들은 아부하는 냥, 무조건 제 이름을 기억할 거라네요. 듣기만 해도 얼마나 행복하던지. 그래서 오늘은 오랜만에 떡볶이 파티를 하자고 했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결석할 친구들도 있겠지만, 캐럴송 틀어놓고 학원에 오는 친구들에게 맛있게 만들어서 주려고 합니다. 산타할머니 모니카...

성인들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은 그 누구보다 자신과 가까이 있는 이웃을 사랑하는 날입니다. 오늘 예수탄생전야를 보내면서 한 해 동안 소식이 뜸 한 벗들부터 매일 만나도 늘 새로운 벗들에게까지, 서로 사랑의 언어를 보내볼까요. 언어는 그 사람 맘의 모습이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를 찾아서 건네보세요. 혹시, 찾을 수 없다면 힌트는 바로 시인들의 시집 안에 있을 수 있답니다. 성탄제, 예수의 탄생. 사랑과 화해의 상징인 성탄제를 통해 생명의 고귀함에 대한 성찰을 유도한 오장환 시인의 <성탄제>라는 시를 읽어볼까요...

봄날의 산책 모니카.


성탄제- 오장환


산 밑까지 내려온 어두운 숲에

몰이꾼의 날카로운 소리는 들려오고,

쫓기는 사슴이

눈 위에 흘린 따뜻한 핏방울.


골짜기와 비탈을 따라 내리며

넓은 언덕에

밤 이슥히 횃불은 꺼지지 않는다.

뭇 짐승들의 등 뒤를 쫓아

며칠씩 산속에 잠자는 포수와 사냥개,

나어린 사슴은 보았다

오늘도 몰이꾼이 메고 오는

표범과 늑대.


어미의 상처를 입에 대고 핥으며

어린 사슴이 생각하는 것

그는

어두운 골짝에 밤에도 잠들 줄 모르며 솟는 샘과

깊은 골을 넘어 눈 속에 하얀 꽃 피는 약초.


아슬한 참으로 아슬한 곳에서 쇠북 소리 울린다.

죽은 이로 하여금

죽는 이를 묻게 하라.


길이 돌아가는 사슴의

두 뺨에는

맑은 이슬이 내리고

눈 위엔 아직도 따뜻한 핏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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