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26 안도현 <우리가 눈발이라면>
말랭이마을에도 펄펄 눈이 왔어요. 바람 타고 눈이 왔어요.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송이송이 하얀 솜을 자꾸자꾸 뿌려 줍니다.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하얀 가루 떡가루를 자꾸자꾸 뿌려 줍니다.’라는 동요가 생각나서 흥얼거렸어요.
말랭이 고갯길로 천천히 차를 몰고 오면서 아마도 이곳에서 보는 마지막 설경이려니 했네요.
눈이 와서 바깥이 춥다 해도 말랭이 골목길 설경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지요. 입주작가 첫 해,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역시 눈 덮인 말랭이골목길과 장독대입니다. 도시풍경치 고는 매우 이색적인 시골풍경이었지요. 그래서 백석의 나타샤와 당나귀가 걸었을 발걸음으로 ‘푹푹’ 말랭이 길을 걸었던 추억이 있습니다. 오늘 새벽도 그때의 추억이 불쑥 일어나 골목을 한 바퀴 돌까...창밖을 바라보며 창틈으로 들어오는 찬 기운만 들어마시고 이 편지를 씁니다. 그 덕분에 띵 했던 머리가 맑아지고, 손가락이 생생하게 살아나네요.
오늘은 새해에 제가 하고 싶은 아주 중요한 일이 있어서 손가락이 깨어나야 한답니다. ‘군산인문학당 발대식‘이 있지요. 이 단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정회원으로 힘을 합한 사람들의 희망은 무엇인지를 의논하는 날입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혼자서 이런저런 프로그램도 만들어 보고요. 타인의 의견을 수렴할 공간도 미리 준비해 두었습니다.
군산 인문학당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 누구나 주인의식을 가지고 공부하고 언행일치하는 회원들이 되는 것‘입니다. 인문(人文)과 학당(學堂)이라는 두 단어가 지향하는 곳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지역공동체에서 평생 공부의 즐거움과 상생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단체가 되도록 노력해야지요.
비록 발대식의 모습이 작고 빈약하더라도, 단체에 들어오신 회원들의 인성과 재능은 가히 으뜸이라 믿고요. 저는 회원들의 다양성이 아름다운 화음으로 울려 퍼지도록 중개와 중추역할을 잘해보겠습니다.
논어의 양화 편에 이런 말이 있지요.
- 성상근 습상원(性相近 習相遠) : 사람의 본성은 서로 비슷하지만, 배우고 익히는 것에 따라 서로 멀어진다.-
공부를 할수록 더 다채로운 색과 멋을 지닌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뜻이겠지요. 우리 군산인문학당에 오시면 이 말을 실감할 수 있을 정도로 열심히 이끌어보겠습니다.
오늘은 1차 정회원님들만 모시고 출발하지만, 새해 따뜻한 봄이 오면 2차 회원을 모집할 예정입니다. 군산에서 오래된 미래를 꿈꾸는 인문학당회원들의 모습, 아름다운 지역공동체의 중심이 될 저희 단체를 응원해 주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안도현시인의 <우리가 눈발이라면>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우리가 눈발이라면 – 안도현
우리가 눈발이라면
허공에서 쭈빗쭈빗 흩날리는
진눈깨비는 되지 말자
세상이 바람 불고 춥고 어둡다 해도
사람이 사는 마을
가장 낮은 곳으로
따뜻한 함박눈이 되어 내리자
우리가 눈발이라면
잠 못 든 이의 창문 가에서는
편지가 되고
그이의 깊고 붉은 상처 위에 돋는
새살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