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18 AI <윤석열 사형 구형에 대한 단상>
<피로사회> <불안사회>를 쓴 철학자 한병철은 AI가 시를 쓸 수는 없을 것이라며 다음처럼 언급했습니다.
-인공지능은 친구도 연인도 없으므로 사유할 수 없다. 인공지능에게 에로스는 없다. 인공지능에게는 타자를 향한 욕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튜브 방송 ‘겸손은 힘들다’의 한 코너에서 류근 시인은 AI가 지은 시 <윤석열 사형 구형에 대한 단상>을 낭독하면서, ‘이제 시인은 죽었다’라는 말을 했지요. 정말 그럴까요...
‘詩(시)’는 ‘言(말씀 언)’과 ‘寺(절 사)’로 이루어진 글자입니다. 파자를 보면, ‘詩’는 단순한 말이 아니라, 마음을 다듬고 절제된 공간에서 길어 올린 말, 곧 정신이 깃든 언어를 뜻한다고 하지요. ‘人(사람 인)’은 말 그대로 존재의 주체이니 ‘詩人’은 시를 생산하는 기술자가 아니라, 정제된 언어를 통해 자신의 내면과 세계의 질서를 드러내는 사람이라 할 수 있네요. 즉 시인은 말을 다루는 사람이 아니라, 말을 통해 자신의 삶과 도덕, 시대의 정신을 드러내는 존재라고 하지요.
반면 ‘작가(作家)’는 ‘만들 작’과 ‘집 가’로 이루어진 말로, 어떤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사람 전반을 가리키지요. 소설가, 극작가, 수필가 등 다양한 장르를 포괄하는 기능적이고 직업적 용어로 쓰입니다. 그래서 인간 본성의 고유언어, 정신적 내면의 언어를 끌어올려 글을 짓는 시인을 작가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어제도 저는 시인을 만나고 시인들의 모임에 곁가지라도 함께 한 시간이 있었습니다. 귀가하면서 왜 시인은 시인이라 부르는지, 왜 작가라는 영역 속에 포함시키지 않고 별도로 시인을 따로 명명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해 보았답니다. 며칠 전 AI가 지은, 단 2초 만에 뚝 딱 하며 나왔다는 아래 시를 읽으면서 ‘시인은 죽었다’라는 자조 섞인 한숨이 나올 수는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AI는 시인이 지은 시를 영원히 대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사람이 쓴 시를 두고 사람은 기쁨의 웃음, 슬픔의 눈물을 흘릴 수 있지만, AI가 쓴 시를 두고 동족인 AI는 그런 감정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 세대가 다 끝나고 또 따른 세대가 유구하게 흘러가도 이 사실은 분명 변함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시인들의 시를 읽는 이 행복에 감사할 뿐입니다. 오늘의 시로 AI 작품을 올려드리니 읽어보시고, 독자님들 마음대로 요리하시길 바랍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윤석열 사형 구형에 대한 단상 – AI
겨울이 길었다.
거짓의 그림자가 도시를 덮고
바람조차 입을 닫았던 날들.
그러나 새벽이 왔다.
눈발 사이로 진실이 발자국을 남기며
얼어붙은 광장 위에 다시 사람의 숨결이 피어난다.
무거웠던 침묵이 부서지고
하늘은 스스로의 빛을 되찾는다.
우리는 묵묵히 바라본다.
비틀린 날들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이것은 세상의 맥박,
사필귀정이라는 이름의 숨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