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29 김수열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2018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제주 4.3 사건 70주년을 맞아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추념식에서 그 가족을 안아주며 국가폭력으로 인한 고통에 대해 사과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젯밤 2026 줌 완독회(시인과 함께 시를 완독 하는 모임)의 첫 번째 날, 제주 이야기를 들려준 김수열시인을 만나서 독특한 제주의 방언, 제례와 굿 문화 속에 담긴 4.3 사건을 다시 듣는 시간이 있었네요. 시인의 입을 빌려 읽게 된 제주어는 시인 말대로 표준어 이전에 유전자로 배어있는 모어(어머니의 말)였습니다. 그 언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또 생생하게 살아있어야 하고 우리가 지켜야 하는지를 배웠고요. 우리의 삶은 누군가의 죽음 빛이 밝혀준 흔적이라는 것을 기억합니다. 제주의 이야기뿐만이 아니고, 굵직굵직한 사건을 애도할 수 있는 글을 담은 이 시집을 꼭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제주에 놀러만 갔던 부끄러움이 앞서서 지금이라도 이 시집 한 권 읽어보았다는 것이 일말의 위로가 될 정도였습니다.
오늘은 군산 인문학당 첫 번째 공식행사, ’ 군산작가초대마당‘이 있습니다. 시인과 수필가 각각 1분씩 초대하여 그들의 다채로운 이야기마당을 꾸며보려 하고요. 어제는 이순화 시인의 시집을 소개했는데요. 오늘은 편성희 수필가의 이야기 한편을 잠깐 들려드려요.
- 품고 있던 말들이 씨앗으로 여기저기 뛰다가 내 어깨에 앉거나 발등에 않아 조용하다. 아픈 내 소리를 가만히 들어준다. 마치 내 소리를 듣고 글자 맞추기를 하는 것처럼 내 마음을 꺼내어 공원의 숲에 펼쳐놓는다. 분해된 나를 퍼즐처럼 맞춰본다. 묵은 꿈들이 바스스 일어나 다시 공중을 날고 세상의 일들은 그 위를 스쳐 사라진다. 숲속을 날아다니는 내 마음의 씨들이 이루고 싶었던 한 문장으로 길을 내며 먼 곳을 향한다. - (’숲속의 글씨’ 중에서)
편성희 작가님의 글은 생활 에세이라기 보다는 시적 감수성이 매우 풍부하게 담긴 에세이입니다. 아주 작은 사물의 형태는 물론이고 그들이 내는 소리까지도 눈으로 보고 표현하는 섬세함은 참 부럽습니다. 오늘 작가님의 말을 직접 들으면서 단순하고 거칠기도 한 일상의 묘사 밖에 못하는 저에게 큰 배움의 시간이 될 것 같아서 기다려지네요 군산작가를 초대하여 특별한 시간을 만들어 보고 싶은 제 마음을 읽으시고 즐거운 시간 나누시게요. 오전 10-12시 봄날의 산책에서 진행합니다. 오늘의 시는 어제 만난 김수열 시인의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 김수열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천둥 번개에 놀라 이리 휘고
눈보라 비바람에 쓸려 저리 휘어진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나이테마다 그날의 상처를 촘촘히 새긴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불벼락을 뒤집어쓰고도
모질게 살아 여린 생명 키워내는 선흘리 불칸낭
한때 소와 말과 사람이 살았던
지금은 대숲 사이로 스산한 바람만 지나는
동강리 무등이왓 초입
등에 지고 가슴에 안고 어깨에 올려
푸르른 것들을 어르고 달래는 팽나무 같은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허리에 박혀 살점이 된 총탄마저 보듬어 안고
대창에 찔려 옹이가 된 상처마저 혀로 핥고
봄이면 어김없이 새순 틔워 뭇새들 부르는
여름이면 늙수그레한 이에게 서늘한 그늘이 되는
나무 한그루 심고 싶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푸르고 푸른
나무 한그루 심고 싶다
내일의 바람을 열려 맞는 항쟁의 마을 어귀에
아득한 별의 마음을 노래하는 나무 한그루 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