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봄날 아침편지 296

2026.2.8 오탁번 <폭설>

by 박모니카

어제 종일 제법 차갑다 싶더니 급기야 저녁에 함박눈이 펄펄 내리더군요. 창밖 보며 글 하나 쓰고 있는데, 쏟아지는 눈송이를 받아먹고 싶어서 갑자기 고양이에 쫓기는 쥐새끼 마냥 우르르르 쏙 하고 문밖으로 나가서 책방의 눈 풍경을 영상으로 담았답니다. 올겨울은 유독 눈이 오지 않아서인지 참 반갑더군요. 그리고 대설이나 폭설에 관한 시 몇 편을 쭉 찾아보았지요. 머릿속으로는 오탁번 시인의 <폭설>이라는 시를 생각하며 절로 웃음이 났고요.


바로 인문학당단톡에 ’ 눈을 연상하는 오행시‘ 이벤트를 걸었어요. 제가 돈을 많이 버는 사람도 아니건만, 무슨 무슨 이벤트라며 돈 쓰는 일을 잘도 벌인다고 벗들은 말하죠. 하지만 그런 단순한 아이디어로 많은 사람이 즐겁기를 바라는 마음이 좀 더 클 뿐이예요. 오늘 12시까지 작품을 내시면 ’ 모니카 맘대로 작품상‘을 뽑아서 선물드린다 했어요. 오랜만에 제 눈을 시원하게 호강시켜 준 하얀 눈송이에게 주는 보답이라고나 할까요.^^


어제 아침에 잠시 ’ 중용‘의 첫 구절을 읽고 그 뜻을 생각하는 명상의 시간이 있었어요.


’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 수도지위교(脩道之謂敎)‘


사실 제가 이 글자의 본뜻을 다 이해하고 체득할 만큼의 지식이나 지혜는 턱없이 부족하지만요.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지요. ’ 하늘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선한 마음, 선한 본성이구나 ‘ 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하늘은 나에게 ’ 긍정적으로 살아라라고 명했으니 그에 어긋나지 않게 사는 삶이 가장 행복한 거구나 ‘ 하는 생각이지요.

오늘도 저는 무엇이든 긍정적인 마음으로 역지사지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보려 합니다. 눈이 많이 와서 힘든 사람의 마음도 헤아려보고, 또 눈이 오지 않아 심드렁하는 사람의 마음도 챙겨보고요. 어쨌든 오늘도 저는 책방지기 하면서 또, 설경 사진 몇 장 찍으면서 놀아 볼게요. 오늘의 시는 폭설하면 가장 많이 웃음이 터지는 오탁번 시인의 <폭설>을 들려드리니 실컷 웃어보세요. 웃으면 복이 덩실덩실 온다지요. 봄날의 산책 모니카.


폭설(暴雪) - 오탁번

삼동에도 웬만해선 눈이 내리지 않는

남도 땅끝 외진 동네에

어느 해 겨울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이장이 허둥지둥 마이크를 잡았다

-주민 여러분! 삽 들고 회관 앞으로 모이쇼잉!

눈이 좆나게 내려부렸당께!


이튿날 아침 눈을 뜨니

간밤에 자가웃 폭설이 내려

비닐하우스가 몽땅 무너져 내렸다

놀란 이장이 허겁지겁 마이크를 잡았다

-워메, 지랄나부렀소잉!

어제 온 눈은 좆도 아닝께 싸게싸게 나오쇼잉!

왼종일 눈을 치우느라고

깡그리 녹초가 된 주민들은

회관에 모여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다

그날 밤 집집마다 모과빛 장지문에는

뒷물하는 아낙네의 실루엣이 비쳤다

다음날 새벽 잠에서 깬 이장이

밖을 내다보다가, 앗!, 소리쳤다

우편함과 문패만 빼꼼하게 보일 뿐

온 천지가 흰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하느님이 행성만한 떡시루를 뒤엎은 듯

축사 지붕도 폭삭 무너져 내렸다

좆심 뚝심 다 좋은 이장은

윗목에 놓인 뒷물대야를 내동댕이치며

우주의 미아가 된 듯 울부짖었다

-주민 여러분! 워따 귀신 곡하겠당께!

인자 우리 동네 몽땅 좆돼버렸쇼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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