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2.18 이정록 <설날>
혹시 설날에 드신 음식, 과하진 않았을까요. 저는 그런 듯해서 오늘은 잠시 비워두려고 합니다. 하지만 설날 성묘에서부터 저녁 식사에 이르기까지, 집안의 어른들 얘기에 꽃 피웠던 담소는 잘 저장해 두려 하지요. 특히 결혼식 사진을 시골집에서 발견하여, 제 아이들이 처음으로 자세히 보았는데요, 그 시절이 하도 젊고 푸르러서 벗들에게 보여주었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형부는 이쁘고, 언니는 그때도 도도했네.’라고요.
서른 다섯 나이에 결혼하면서, 신랑 신부가 하도 여유로워서, 하객들이 놀랄 정도였던 기억이 떠올랐답니다. 아마도 일부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르지요. ‘첫 결혼이 아닌가??’라고요.^^ 저는 그때도 제 가족들 – 아빠, 엄마, 제 동생들, 그리고 친척들-의 대단한 기대치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가진 것은 없었어도 부모 사랑, 형제 존경을 받고, 큰딸로서 언제나 당당하게 집안을 대표했기에 더 어른스러웠는지도 모르지요.
또 남편의 중학교 시절부터 청년 시절의 사진을 본 아이들, 특히 말없는 아들이 긴 시간 동안 남편과 이야기를 주고받아서 정말 좋았습니다. 제 아이들은 요즘 아이들 같지 않게 옛 것에 대한 묘한 집착이 있는 듯, 오래된 물건이나 이야기, 추억들을 소중히 여기는 자세가 예쁩니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지요. 제 친정아버지 묘소 (아이들 입장에서는 외할아버지)에서도 예를 다하는 모습도 고맙고요.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이런 명절이라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요...
오늘은 공지 하나 할까 해요. 군산인문학당에서 펼쳐질 다양한 프로그램 중에 ‘사람책 시리즈’가 있는데요. 그 첫 번째 강연자로 신혜정 작가를 모십니다. 자전거 하나로 한국에서 튀르기예 까지 여행했고요, 그것도 환경보호운동을 실천한 젊은 작가입니다. 2.25(수) 오전에 강연이 있는데, 미리 홍보하니, 시간 되시면 꼭 와서 함께 들어보세요. 전주, 목포 등 강연 후기가 장난 아니게 좋아서 제가 후다닥 섭외했어요. 특별선물도 준비합니다.^^ 이정록시인의 <설날>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설날 - 이정록
-설날과 떡국 이야기
설을 맞아 먹는 떡국은
한 살 더 먹으라 먹는 게 아니고
하얗고 뽀얗게 새롭게 태어나라고
먹는 음식이리라
순백의 떡과 따뜻한 국물로
지난해의 묵은 때를 씻어버리라는 것
설을 쇠다의 정확한 뜻은
새해를 맞아서
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는 날로
나쁜 기운을 쫓아낸다는 의미이리라
아직도 구정(舊正)이라 하는 이들이 있다
구정이란 문자 그대로 옛 설이라는 말인데
이 말은 일제가 우리 민족의 얼과 문화를
말살시키기 위해
자신들의 설 문화를 기준으로
신정(新正)을 강제하였던 것이다
신정, 구정 모두 일본식 한자어이며
순우리말인 설날이 올바른 표현이다
일본 총독부는 1936년
조선의 향토오락이란 책을 펴낸 이후
우리말, 우리 글,
성과 이름까지 빼앗고
우리 한민족문화를 송두리 째
말살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우리 설도 신정이란
양력설에 빼앗기고
구정이란 초라한 이름으로 내몰렸고
그 후로 팔십 년을 하층 민초들이나 쇠는
천덕꾸러기 명절이 되었다
일본총독부는
우리 민족의 정신적 지주
큰 명절 설을 구정이란 말로 격하시켜
민족정신을 말살시키려 광분했다
이제 구정 신정이란
일제의 잔재는 청산되었다
이제부터는 꼭 설날에는
"설 잘 쇠십시오"
"설 잘 쇠셨습니까"라 해야 한다
그래야 아주 오랫동안 말살되었던
우리의 민족혼과 정체성이 다시 살아나
다시는 민족 혼이 침해되지 않고
굴욕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으리라
<참고> 우리 문단에 이정록 시인이 두 분 계시는데요, 이 글은 샘문 뉴스 발행인이신 이정록 시인께서 쓰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