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2.21 강형철 <야트막한 사랑>
‘복실아, 간밤에 잘 잤느냐?‘ 계단을 내려오는 발걸음 소리에 두 다리는 풀어져 있지만 귀는 쫑긋하니 아침 인사를 하는 우리 복실이. 사람 나이로 치면 100살이 넘었다 하니, 무슨 짓을 해도 다 용서가 되고 늙는 것이 안쓰럽고 애처로울 뿐이죠. 언젠가 나도 저렇게 민망할 행동을 할 때가 오려니 하고, 다행히 뒷 처리해 줄 내가 있어서 너는 다행이다 싶은 맘까지 발동한 일이 있었답니다. 밤새 괜스레 눈치 보고 잠을 잔듯해서 소곤소곤 부드럽게 눈 맞추고 왔네요.
“나이가 들면 다 느려져. 작가님이 대신 해준께 참말로 좋네.” 말랭이 어머님의 말씀이지요. 이분의 자녀는 멀리 있는데요. 일반 택배가 가지 못하는 곳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던 어느 날부터 제가 대신 책을 보내드려요. “순하디 순한 놈이 어쩌다 순간 화를 못 참아서 그렇게 됐어. 근디, 이제 12월이면 나와. 책을 좋아한 게 책 값이 비싸도 사서 보내줘야 돼. “ 어제는 그 아드님이 논어와 중용, 대학, 맹자를 보내달라고 했다고... 책방에 있는 두 권을 포장해서 우체국까지 동행하며 어머니 말씀도 듣고요. 후다닥 발송하는 거 보면서 젊음이 부럽다고 하셨지요. ’ 제가 5년 전 처음 말랭이에서 어머니 뵈었을 때만큼이나 지금도 엄청 예쁘세요.‘라고 맞장구쳤답니다.
이왕 나선 길에 말랭이 설 때 준비한 과일상자 하나 들고 어머님들께 인사하러 갔는데, 작년에 제가 인터뷰하고 당신들 이름으로 나온 에세이집을 2권밖에 못 팔았다고, 미안해하셔서, 저는 책방 하는데도 2권밖에 못 팔았어요. 우리끼리 읽으려고 했으니 괘념치 마시라 해도 작가님이 얼마나 고생했는데, 책이라도 다 팔아주고 싶다고... 하시더군요. 당신들 마음만 받아도 충분히 행복하다 라며 한참을 수다 부리고 돌아왔네요. 이제는 한 동 가족이 되어서 정말 좋다는 그 말씀, 저도 같은 심정이라고 어린양도 부리고요.^^
오늘은 군산에 있는 책방들이 연합해서 작은 ’ 북 마켓‘을 행사하는데요. 제 책방 봄날도 한 자리 맡아서 손님 맞겠지요. 오로지 ’ 시집’만 들고 나가고요. 시를 필사하거나, 시인에게 엽서 편지를 쓴다거나 하는 ‘기록의 행위’를 선보입니다. 군산에서 가장 큰 서점 한길문고 대표의 주관하에 행사되는 거라, 언제나 일선에 나서는 사람들의 고생을 알고 있어서, 저는 뒷선에서 약간의 기부금으로 수고를 위로했습니다. 오늘 봄날의 책방매니저 은경샘이 계시니, 많이 놀러 나오셔서, 다른 책방들 두루 돌아다니시며, 책도 사주시고요.^^ 책방 하는 저도 며칠 전 고창 서점마을(6 가구 책방)에 가서 각 책방의 특징을 살린 책을 12권이나 사 왔답니다. 책방의 주요 역할 중 하나는 좋은 책을 판매하는 일... 군산의 책방관계자들이 뜻있는 일을 행하는 것이니 함께 힘 모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군산 강형철시인의 <야트막한 사랑>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야트막한 사랑 - 강형철
사랑 하나 갖고 싶었네
언덕 위의 사람 아니라
태산준령 고매한 사랑 아니라
갸우듬한 어깨 서로의 키를 재며
경계도 없이 이웃하며 사는 사람들
웃음으로 넉넉한
사랑 하나 갖고 싶었네
매섭게 몰아치는 눈보라의 사랑 아니라
개운하게 쏟아지는 장대비 사랑 아니라
야트막한 산등성이
여린 풀잎을 적시며 내리는 이슬비
온 마음을 휘감되 아무것도 휘감은 적 없는
사랑 하나 갖고 싶었네
이제 마를대로 마른 뼈
그 옆에 갸우뚱 고개를 들고 선 참나리
꼴 좀 핥을까 기웃대는 일별
한오큼 얻은 꿀로 얼굴 한번 훔치고
하늘로 날아가는
사랑 하나 갖고 싶었네
가슴이 뛸 만큼 다 뛰어서
짱뚱어 한 마리 등허리도 넘기 힘들어
개펄로 에돌아
서해긴 포구를 찾아드는 밀물
마침내 한 바다를 이루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