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봄날 아침편지 319

2026.3.3 이원규 <달빛을 깨물다>

by 박모니카

오늘은 정월 대보름(음 1.15)이에요. 일 년 중 가장 큰 보름달이 뜨는 날로, 오곡밥과 각종 부럼을 먹으며 한 해의 건강과 복을 기원하지요. 예전 같으면 친정엄마께서 어제 전화하셔서 오늘 아침밥 건너와서 먹으라고 말씀하셨을 텐데, 지금까지도 아무 말씀 없으시니, 분명 준비를 못하셨겠지요. 이럴 때 제가 오곡밥이라도 해서 가지고 가야 하는데,,, 말만 하고 실천을 안 하는 불효입니다. 어찌 점심이라도 함께 드시자고 해야겠어요^^


정월 대보름을 한자어로 ‘상원(上元)’, 중원(中元 : 음력 7월 15일, 백중날), 하원(下元 : 음력 10월 15일)이 있고요. 추석이라 부르는 팔월대보름(8월 15일)과 함께 지칭되는 주요 보름달들이 있지요. 정월 대보름인 오늘은 우리 세시풍속에서도 설날만큼 큰 비중으로 행사하는데요. 저희 집만 해도 친정엄마는 추석과 동등하게 오늘을 큰 명절로 여기고 상을 차리셨지요. 아버지가 어업을 하셨기에, 모든 생활 일자가 음력으로 계산되고, 음력은 달의 움직임과 연결되니, 당연히 어린 시절, 달님을 향해 기도하는 엄마 아빠의 모습을 많이 보았겠지요. 그러니 유전적으로 달을 향한 그것도 보름달을 향한 무언의 몸짓이 실려 있을 거예요.


하여튼 오늘 오곡밥도 꼭 드시고 부럼도 드시면서, 특히 바꾸고 싶은 습관, 이참에 꽉 깨물어서 부숴 버리시고요. 저도 게으름 부리는 못된 습관을 오독오독 부럼 먹으면서 없애도록 다짐해야겠어요..~~ 아, 또 이번 보름날은 개기월식(블러드 문)을 함께 볼 수 있다고 하네요. 36년 만에 펼쳐지는 우주쇼라는데, 어제 내린 비구름이 아직 걷히지 않았는데, 잘 관측될지도 궁금하군요.


오늘의 시는 어제 친구에게 들려주었던 이원규 시인의 <달빛을 깨물다>를 들려드리고 싶군요. 이 시를 읽고 나면 하늘에 매양, 심심하게 같은 모양으로만 보였던 달이 다른 모양으로 보일거예요. 달빛을 깨물고 싶은 날들이라고 말하는 시인의 마음소리를 들으면서, 시를 읽는 당신의 마음도 분명 달라지실거예요. 동시에 시 읽기가 얼마나 좋은 보양식인지도 느끼게 될 거예요. 한발 더 나아가는 분은 ‘나도 저런 시 쓰고 싶다’까지 발전하게 될 거예요. 지금도 읽어보시고, 혹시나 저녁에 보름달 만나시거든 제 안부도 전해주시고요. 이원규 시인의 시도 들려주세요. 봄날의 산책 모니카.


달빛을 깨물다 - 이원규


살다 보면 자근자근 달빛을 깨물고 싶은 날들이 있다


밤마다 어머니는 이빨 빠진 합죽이였다

양산골 도탄재 너머 지금은 문경석탄박물관

연개소문 촬영지가 된 은성광업소

육식 공룡의 화석 같은 폐석 더미에서

버린 탄을 훔치던 수절 삼오십 년의 어머니

마대 자루 한가득 괴탄을 짊어지고

날마다 도둑년이 되어 십 리 도탄재를 넘으며

얼마나 이를 악물었는지

청상의 어금니가 폐광 동바리처럼 무너졌다


하루 한 자루에 삼천 원

막내아들의 일 년 치 등록금이 되려면

대봉산 위로 떠오르는 저놈의 보름달을

남몰래 열두 번은 꼭꼭 씹어 삼켜야만 했다


봉창 아래 머리맡의 흰 사발

늦은 밤의 어머니가 틀니를 빼놓고

해소 천식의 곤한 잠에 빠지면


맑은 물속의 환한 틀니가 희푸른 달빛을 깨물고

어머니는 밤새 그 달빛을 되새김질하는

오물오물 이빨 빠진 합죽이가 되었다


어느새 나 또한 죽은 아버지 나이를 넘기며

씹을 만큼 다 씹은 뒤에

아니, 차마 마저 씹지 못하고

할 만큼 다 말한 뒤에 아니, 차마 다 못하고

그예 들어설 나의 틀니에 대해 생각하다

문득 어머니 틀니의 행방이 궁금해졌다

장례식 날 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털신이며 속옷이며 함께 불에 타다 말았을까

지금도 무덤 속 앙다문 입속에 있을까


누구는 죽은 이의 옷을 입고 사흘을 울었다는데

동짓달 열여드렛날 밤의 지리산

고향의 무덤을 향해 한 사발 녹차를 올리는

열한 번째 제삿날 밤이 되어서야 보았다

기우는 달의 한쪽을 꽉 깨물고 있는, 어머니의 틀니


<참고> 오늘은 특별한 블로그 한 소개합니다. 줌 시 강독을 진행하시는 완주인문네트워크의 이종민 교수님 블로그. 들어가 보세요. 위 시에 대한 교수님의 말씀도 함께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lcmbl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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