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봄날 아침편지 320

2026.3.4 안상학 <발밑이라는 곳>

by 박모니카

인간이 만든 가장 큰 슬픔은 ‘전쟁’입니다. 만약 우리가 지금 ‘전쟁 가능성’을 너머, 진짜로 ‘전쟁발발’ 나라가 된다면, 여러분은 어떤 마음입니까. 며칠 전, 딸과는 이런 대화도 했습니다.

“힘이 있는 놈들이 오로지 제 맘에 들지 않는다고 전쟁을 일으키는 일은 도저히 눈뜨고 참을 수 없는 일, 너랑 나랑은 어떻게 하면 남의 일이 아닌 내 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가장 작은 최소한의 도의적이고 사람다운 행동은 무엇인지 우린 고민하고 살자.”


결코 남의 일이 아닙니다.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중동지역의 전쟁은 언제든지 우리의 일이 될 수 있지요. 얼마 전 베네수엘라 땅에 맘대로 들어와서 그 나라의 대통령을 강제로 끌고 가는 행위를 보면 더욱더 그런 생각을 굳혔답니다. 우리가 어떤 나라입니까. 역사적으로 외세의 침입 및 지배하에 있었지만, 특히 근대 이후, 한국전쟁 전후부터 미국의 사실상 식민지에 있지 않습니까. 군산만 해도 그렇습니다. 미국놈들이 차지하고 있는 우리의 옥구 및 군산 땅을 보면 가만히 있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다못해 팽나무라도, 수라갯벌이 보면서 기도하는 거지요.


하여튼 아침 국제뉴스를 듣다 보니, 아침부터 속이 벌떡거리고 신물이 올라오는데, 우리 주식시장 급하락 얘기만 난무하고, 그중 방위산업 회사만 빨간불이었다는 아나운서 멘트에 인간으로서 자멸감이 느껴집니다. ‘검은 화요일‘이 지속되더라도, 당분간의 어려움이 있더라도, 제발 전쟁으로 인한 무고한 생명의 죽음이 멈춰지길 바랄 뿐입니다. 저는 무엇을 하든 ’함께 잘살기‘를 위해 열심히 돕고, 열심히 실천하고 싶을 뿐이죠.


어제는 정월 대보름 저녁이라고, 지인들이 올려주시는 달님 모습 많이 보았는데요. 개기일식, 블러드 문... 역시나 달빛 색의 붉음이 매우 오묘하더군요. 저도 어제 이런저런 일로 마음이 편치 못하여 아마도 제게 보인 달도 더 얼룩덜룩 붉은 자국으로만 보였던 것 같아요. 제아무리 밝은 달도 마음이 어두우니 예쁘게 보이지 않더군요. 하지만 오늘 밤 다시 본다면 아마도 달리 보이겠지요. 달리 보이도록 좋은 생각 좋은 사람과의 접속을 열심히 눌러보겠습니다. 안상학 시인의 <발밑이라는 곳>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발밑이라는 곳 - 안상학

내 발밑은 나만의 공간이다

한날한시에 태어난 그 누구라도

서로의 발밑을 동시에 밟을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내 발밑은 언제나 나만의 신성불가침 구역이다


사람은 발밑을 밟으면서부터는 단독자다

여섯 살 장마철 처음 밟아 죽인 지렁이

여덟 살 여름날 뭉개버린 개미집

적어도 두 발 아래 학살까지도 책임질 줄 아는 단독자다


흘러간 전쟁 비망록에는 발밑을 빼앗긴 주검들이 많다.

가마니 따위를 뒤집어쓴 시신의 빠져나온 발바닥

그들의 발밑을 유린한 무수한 발소리들은 건재한가

내가 알기로 전범들의 발밑도 오래지 않아 발바닥에서 이탈해갔다

발밑을 가진 적 없는 젖먹이와

발밑을 상실한 노인의 꼼지락거리는 발가락이 닮았다

발밑을 잠시 버리고서야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의 몸짓

발밑 없이 와서 발밑과 동행하다 발밑을 잃고서야 돌아가는 인생

때가 되면 발밑에 연연하지 않아야 될 때가 한번은 오는 법이다


누구나 발밑을 밟고 사는 동안은 우선 발밑이 안전하길 기도한다

발밑은 나눌 수도 공유할 수도 없는 독자적인 것이다

세상 누구의 발밑도 건드려서는 안 된다

많은 부분 나무들에게서 배우고 익힐 필요가 있다

누구의 발밑도 신성불가침 성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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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보내준 보름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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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찍은 보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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