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3.26 안도현 <꽃밭을 한 뼘쯤 돋우는 일은>
당신의 눈에 쓸데없어 보이는 것들이 있으신가요. 쓸데없이 눈부신 것들을 볼 줄 안다면 아마도 우리는 시인의 눈을 가진 사람이 되어가는지도 몰라요. 어젯밤, 한 달에 한 번, 줌으로 시를 읽는 완독회에서 3월에 만난 분은 안도현 시인이었습니다. 시인의 12번째 신작 시집 <쓸데없이 눈부신 게 세상에는 있어요>에 나온 71편의 낭독에 참여한 회원들은 또다시 밤 12시가 넘도록 생생한 모습으로 시 낭독의 즐거움을 만끽했죠.
시인은 말씀하시데요. ‘시를 쓸 때 말이 주는 느낌을 따라가다 보면 또 다른 말들이 와서 시 쓰는 과정이 자유롭고 즐겁다. 마찬가지로 사람을 만날 때도 매번 뚜렷한 의미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친한 사이일수록 쓸데없는 말을 더 많이 나눈다. 소위 멍 때리는 순간들이 우리의 마음을 더 살찌우는 것 같다.’ 라고요.
사실 우리는 대부분 ‘의미’와 ‘역할’을 찾아 나서죠. 저같이 일 중심, 목표지향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은 더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일 잘한다는 소리는 가끔 들어도, 제 스스로 진짜 자유로운 사유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부족한데요. 그나마 매일 아침 이런 편지를 쓰거나, 시를 읽거나, 자유로운 사람을 만남으로써 저의 못남을 설렁설렁 감추고 살아간답니다.^^ 그러니 저야말로 더불어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 그러나 나이 들수록 ‘쓸데없음’과 ‘소중함‘이 동격이라는 사실이 체감되어서 얼마나 다행인지요.!! 참으로 귀한 시 낭독 시간이었습니다.
안 시인은 시를 통해서- “정말 약한 것들의 편에 서서 노래를 불렀을까”(‘순간 정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말을 쓰고 나니/ 나는 더 편안해졌다”(‘연민’), “나는 쓸모없는 걱정을 하다가 가장 쓸모없는 일이 가장 귀한 일이라는 생각도 한다”(‘흰목물떼새’) - 무엇이 쓸데없고 의미 없는 일이고, 무엇이 중요하고 의미 있는 존재이며, 진정한 가치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이 시도 참 좋습니다.
“흰목물떼새 부부는/ 자갈밭에 낳아둔 알이 서러웠다// 내 그림자를 보고 십 미터쯤 높이의 허공을 도려내며 다급하고 둥글게 울었다”(‘내성천 흰목물떼새 부부에 대하여’ 전문)
이외에 작고하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고향으로 돌아가서의 일상 등을 시집에 담았습니다.
오늘부터 주말 동안 안도현 시인의 시를 읽어보시면서 내 곁에 있던, 나도 몰랐던 ‘쓸데없이 눈부신 게’ 있으면 얼른 주워서 품어보세요. 그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나의 이야기도 들려주시고요. 오늘은 안도현 시인의 <꽃밭을 한 뼘쯤 돋우는 일은>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꽃밭을 한 뼘쯤 돋우는 일은 – 안도현
꽃밭을 한 뼘쯤 돋우는 일을 생각하느라
가을을 다 보냈다
꽃밭의 위상을 높이는 일은 아니었고
꽃들의 구두 뒤축을 받치는 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결국은 마사토 한 트럭을 주문했고
세레스 일 톤 덤프트럭이 부어놓은 흙을 삽으로 떠 꽃밭에
넣었다 마른 꽃무릇은 숨고 구절초 꽃대는 삐죽 고개를 내밀었다
꽃밭이 두툼해지면
발목이 빠진 작약은 키가 낮아질 것이었다
노루귀 옮겨 심은 자리에 흙을 넣을 것인가
말 것인가 가슴을 졸이는 일이 해가 질 때까지 지속되었다
꽃밭에 들어가 돌을 골라내고 있는데 동무가 왔다
꽃밭을 높여보려고 한다니까
시인은 원래 이렇게 쓸데없는 일 하는 사람인가, 하고 물었다
꽃들의 키를 높이는 일, 그거
쓸데없는 일이지, 혼자 중얼거렸다
서러 오기 전에 배추나 서둘러 뽑으라 하였다
나는 다음에 톱밥이나 한 포대 사다 달라고 부탁하였다
톱밥은 뭐에다 쓸라꼬?
닭똥 치우고 나서 거기 깔아주려고 하네
그러자 이제는 병아리 키 높이는 일을 하려고 하는구먼, 하고 웃었다
나는 동무에게 자네도 시인 다 되었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