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Oh My Life

측은지심을 길러주는 텃밭공생

2021.7.19

by 박모니카

잠이 들 때, 내일 다시 그대를 볼 수 있기를

눈을 떠서, 오늘 다시 그대를 만날 수 있어서

감사하고 또 감사하나이다.


시간의 풍요를 허락받은 일요일 아침, 오랜만에 아들딸과 함께 아침을 먹어야 한다고, 남편은 문어와 오이, 고추, 토마토, 깻잎으로 만든 비빔국수를 준비했다. 각시는 책 읽으라 하고, 아들은 좀 더 자라 하고, 딸은 독일어 수업강의 들으라 하면서, 부엌에선 도마 위에 뭔가를 써는 소리로 왁자지껄했다.


도와주지도 않으면서 나는 소리쳤다.

“어젯밤 문어물회는 너무 셔서 지금 속이 아파요. 비빔국수는 좀 더 부드럽게 해봐요.”

남편은 대뜸, “마님 명령대로 합지요.” 라고 답했다.


한 시간 쯤 지나자, 남편의 호출이 우렁찼다.

“얘들아, 당신, 빨리 와서 아침 먹자.”

아들은 부스스한 머리와 얼굴로, 아침부터 무슨 밥이 비빔국수야? 라며 투덜댔다.

가장 싫어하는 채소가 가득하니, 제 아무리 정성과 맛이 들어갔어도 별로였을 것이다.


나는 얼른 어제밤 재여 놓은 완자전 재료로 부침을 하면서 아들을 거들었다.

“원래 비빔국수에 완자 한 점 들어가면 제 맛이지. 채소는 엄마한테 넘기고, 아빠의 문어국수 맛 한번 봐라. 색깔부터 끝내주지 않니? 네 아빠 대단해.”


늘 아빠 편인 딸은 칭찬에 칭찬이 넘쳤다.


“아니, 이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 뭐지? 분명 설탕은 아닌 것 같은데. 특별비법을 넣었나? 아부지~~”

“맞혀봐라. 네 엄마가 부드럽게 하라고 해서 뭔가를 넣었지. 당신 맛이 어때?”

“응 좋네. 근데 뭐를 넣었는데요? 올리고당?”

“각시가 좋다고 하니 나도 좋네. 비밀은 바로 우리 집안의 000”

“아하~~ 복숭아구나. 그렇네, 복숭아가 여기있네. 올해도 작은 아빠는 복숭아 팔죠?”

“시간 내서 과수원 한번 가보자. 올해 복숭아는 얼마나 잘 익었는지 궁금하네.”


텃밭을 하면서 가장 많이 공감을 하는 곳이 바로 농사일이다. 말 그대로 하늘의 뜻을 잘 따라야, 농사꾼이 먹고산다. 그런데, 요즘 하늘은 인간들이 만든 장난으로 당신의 뜻을 보여주지 않으니 오히려 애꿎은 농사꾼들만 시름을 더 한다.


아들의 말대로 독특한 아침밥을 먹고 난 후 옥수수가 생각나서 텃밭으로 갔다. 언제쯤 수확해야 제 맛의 옥수수를 먹을 수 있는지를 네이버 박사의 강의를 들었다. 직접 옥수수 수염의 색깔을 비교해야 한다고 벌떡 일어나니, 남편도 엉겁결에 따라나섰다.


우리 옥수수는 4월 초에 옥수수알 150여개를 심었는데, 텃밭의 땅강아지들이 제 식량인 줄 알고 배를 채웠다. 그것을 한참 후에 알고서 다시 모종으로 심었다. 올해 텃밭 작물의 수확순서를 내 나름대로 미리 계산하고 있었다. 잎채소(상추, 치커리, 깻잎 등), 대파, 오이, 가지, 감자 토마토, 호박, 그리고 옥수수 등. 대강 이런 순서였다. 그런데, 옥수수를 재차 심는 바람에 7월 중순에 예정된 옥수수 수확은 뒤로 물러갔다.


“원래, 농사일이란, 늦어도 손해 보는 게 없어요. 제때 장사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이라면 때가 중요하지만, 우리야, 잘 길러서 먹는 재미, 나누는 재미가 첫째니, 늦게 심은 만큼 늦게까지 먹는 재미가 또 있지. 천천히 해요.”

“안돼. 그래도 계획에 맞춰서 나오면 더 좋지. 하여튼 옥수수 수확일정을 다시 잡아야겠다.”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남편의 말이 지당했다. 작물을 키우고 기르는 것이 어디 내 맘대로 되던가. 자식이나, 작물이나, 멀찍이서 바라보면서 무엇이 부족한가, 어떻게 해야 스스로 자라는가를 챙기는 것이 중요하다. 옆 지인의 옥수수 대는 뿌리가 약했는지, 아님 달려든 멧돼지가 강했는지,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되었다. 지인의 속상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는데, 본인이 평소에 좀 더 세세히 살피지 않은 탓이라며, 쓰러진 옥수수대를 정리했다.


올해는 남편의 정성으로 어느 작물 할 것 없이 모두 성공적으로 자라고 있다. 수확한 것들의 맛도 크기도 좋아서 지인들의 고마움도 원 없이 받고 있다.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은 사람을 가르치며 기르는 일이었는데, 텃밭을 한 후부터는 기르며 보살피는 대상의 폭이 넓어졌다.


사람도 중요하지만 만물이 사랑으로 보이고 삶으로 보인다. 그러다보니 모두가 살아있는 존재로 보여 측은지심 [惻隱之心]까지 발동한다. 맹자가 말하지 않았던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어짊의 극치이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은 옳음의 극치이고, 사양하는 마음은 예절의 극치이고,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은 지혜의 극치이다[無惻隱之心 非人也 無羞惡之心 非人也 無辭讓之心 非人也 無是非之心 非人也. 惻隱之心 仁之端也 羞惡之心 義之端也 辭讓之心 禮之端也 是非之心 智之端也].


인간의 감정 중 가장 저변에 깔린 측은지심을 잊지 않고 사는 것이야 말로 사람답게 사는 것이다. 이제라도 자연 생물에 대해 어짊을 베풀 수 있다면 헛된 인생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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