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24 크리스마스이브
오늘 하루라도 뉴스를 도배하는 정치권 이야기가 잦아들까 싶었더니 아침부터 모 고위인사를 비롯한 특별사면소식으로 또다시 일상이 어지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속에는 성탄의 종소리, 빨간 구세군 냄비, 크리스마스 캐롤과 카드 그리고 사람들의 안녕소리로 채워진 하루를 시작했다.
다른 해와 달리 유독 바빴던 12월이었다. 일년을 되돌아보는 활동 중 특히 자원봉사활동에 대한 보고서 작성과 기부금 받은 곳에 감사편지 보내기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돌아보니 왜 이렇게 인사할 곳이 많은지. 그만큼 올해도 많은 분들의 덕을 보고 살아온 시간이었다.
또한 작년에 썼던 버킷리스트를 체크하면서 무엇을 이루고 또 이루지 못한 것은 무엇이었는지 자성의 시간도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두 번째 에세이도 출간했고 글쓰기와 책 읽기 약속은 그런대로 지켰는데, 여전히 맹점은 운동부분이었다. 저절로 새해 약속 칸으로 이전시켰다.
금주 간은 학원생들과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면서 소망을 쓰는 시간을 가졌다. 이제 ABC를 배우는 어린이들도 ‘크리스마스’와 ‘산타’ 라는 말을 알고 있기에 그 말의 스펠링을 카드에 쓰도록 지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의 소망을 쓰고 기도하면 산타할아버지가 오셔서 선물을 주신단다. 알고 있지?”
“에에에~~ 산타는 없어요. 벌써 엄마가 다 사 주었어요.” 초등 2학년의 대답이었다.
그래도 나는 열심히 설명했다. 산타할아버지는 분명히 있다고. 대학생이 된 내 아들 딸은 지금도 산타할아버지 얘기를 한다고. 새벽 4시까지 기다렸는데 잠깐 눈을 감았다가 6시에 일어나보니 커다란 양말 주머니에 스케이트가 있었다고. 심지어 전화까지 해서 고맙다고 했다고.
학생들의 눈과 귀는 몰입되었다. 그러니까 카드를 잘 만들어야 한다는 나의 말에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는 어린이들만의 잔치가 아니었다. 이때다 싶어 중등생들도 카드를 만들고 싶다고 조르고, 선생님들도 신나서 함께 카드를 만들고 크리스마스츄리를 꾸몄다.
크리스마스는 나에게 어떤 존재인가. 아주 어릴 적 동네교회의 첨탑에서 보았던 불빛과 사탕을 준다는 소문에 끌려 교회마당에 첫발을 디뎠던 때부터 이제는 노인이 된 이모의 긴 기도소리와 멀리 이민을 가서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보내주시던 크리스마스 카드에 이르기까지 종교가 없던 나에게도 늘 기쁨과 위로였다. 결혼 후 아이들과 성당에 나가면서, 해마다 학원생들을 위해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면서 성탄은 단순한 휴일 이상의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이제는 나와 가족을 벗어나 지역인들과 함께 나누는 성탄을 생각한다. 작은 일도 함께 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그를 위해서 기도하고, 작은 선물이라도 나누려고 노력한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보니 온통 사랑으로 가득한 사람들 뿐이다. 어제는 함께 봉사활동을 하는 분이 올해도 일년 동안 수고했다고, 딸래미랑 케익 먹으면서 성탄이브 보내라고 롤 케익을 주셨다. 학생들의 소망카드를 들춰보고 엄마아빠 건강하시라고 쓴 어린 초등학생에게 롤 케익 중 하나를 선물로 주었다.
학원생들에게 크리스마스가 좋은 이유 중 일등은 ‘학원수업 안 하는거요’라고 소리치는데 캐롤송 ‘펠리츠나비다‘와 징글벨’를 부르면서 영어스펠링과 댄싱타임을 시작했다. 어린 학년일수록 놀이와 영어가 하나가 되고,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었다. 작은 선물을 준비해서 학생들을 나누고 귀가시키는데 ‘메리크리스마스’라고 손 흔드는 학생들의 모습에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기쁨을 받았다.
글을 쓰는 “책방향기”동아리 회원들에게 11월의 어느날부터 크리스마스이브까지 ‘힘이 되는 한 줄 글’을 올려서 서로 격려하자는 제안을 했었다. 나보다 젊은 문우들은 일상이 바쁘다고 드문드문 올렸는데, 숙자샘, 안나샘, 정글샘 등 인생 선배님들은 부지런하게 글을 올렸다.
그 중 정글님은 모닝콜처럼 우리 방을 두드리며 매일 새날의 탄생을 알게 했다. 필사엽서봉사활동으로 알게 된 정글님의 필사 글에는 직접 그림을 그렸다. 고도근시와 노안으로 시야의 불편을 달고 사는 나에게 얼마 전 올라온 글은 큰 위로가 되었다.
- 하느님이 내게 다른 이들을 바라볼 때
너무 날카로운 시선으로 보지 말라며
늙어서도 날 세우고 살던
내게 노안을 주셨다.- (글-광수생각의 박광수)
이 얼마나 큰 위로였던가!
우리가 크리스마스를 특별히 여기는 이면에는 사랑이란 두 글자가 있다. 하느님은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사랑 주머니를 넣어 두었다고 한다. 아마도 일년 365일 매일 매일 ‘사랑’이란 두 글자를 생각하고 사는 것이 어렵다 하더라도 최소 크리스마스 하루 정도는 가슴에서 사랑 한 조각 꺼내어 나누기를 바랐을거다.
나도 살며시 내 맘 속의 사랑주머니를 만져보았다. 어찌 큰 사람들의 큰 사랑주머니에 비하겠는가. 하지만 비록 작은 주머니에 들은 사랑일지라도 그 농도만은 진하다고 전하고 싶네. 동지날 친정엄마와 함께 만들어 먹었던 붉고 진한 팥죽보다 더 진하다고 말하고 싶어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