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뒤모습이 자주 보인다. 아니 내가 일부러 본다는 말이 맞다. 언제나 나는 남편의 앞을 보았다. 일상에서 나를 먼저 배려하는 것이 몸에 배인 사람이라 뒤돌아보면 남편이 있었다. 마치 하늘 향해 두 팔 벌려 누우면 딱 좋은 양지바른 언덕처럼. 그때는 지금보다 더 젊은 미소로 나를 보았다. 타고난 하얀 새치도 그정도 쯤이야 하며 대수롭지 않았다.
“실례지만 아저씨 요즘 바쁜가 봐요. 몇 살이예요?”
무료 급식 봉사활동을 하던 지인이 묻는다.
“요즘 병원에 있어서요. 나이는 쉰 여덟? 아홉? 인가..”
남편나이도 모르는 사람이 여기있네 라는 핀잔을 웃음으로 넘겼다. 일부러 나이를 세지 않은지 오래다.
만산에 봄이 찾아와서 덩달아 수선스러운 마음을 눈으로 보고 글로 써 보려해도 도저히 되지 않았다. 책방오픈 이래 일상의 일탈에 가속도가 붙어서 도저히 글다운 글을 쓰지 못한다. 명함 위에 써있는 박모니카 작가라는 이름이 무색할 따름이다. 이럴 때 내게 특효약은 남편의 말과 미소다.
어제 보았던 벚꽃들은 꽃비라는 이름을 달고 하염없이 쏟아졌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서 남편에게 차에 타라고 했다.
“놀러갑시다. 어차피 학생들 차량하러 나가는 판에, 은파꽃길은 차로 드라이브하기 딱이잖아요. 당신도 제대로 벚꽃 못봤으니까.”
연애 때도 비를 맞고 느릿느릿 걸어오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비라면 한 톨도 맞고 싶지 않아서 비만 오면 온갖 호들갑을 떤다. 내가 유별스럽다고 생각했다는데 한 이십년 넘게 살다보니 이젠 내 몸짓도 이쁘단다. 정말 오마이 갓이다. 그런 내가 꽃비 맞으며 걸어보자 하니 내심 좋았나보다.
“어제 엄마도 좋았나봐. 걸어서 수시탑까지 갈 때 분명 힘들었을텐데도 걸어오시데. 가장 이쁜 곳에 앉아서 엄마랑 사진 한 장 찍었네. 당신도 오늘 사진 찍어줄 게 걸어봐요. 나만 찍지말고. 이쁘지도 않은 나를 웬만큼 찍어. 요즘은 마스크가 은인이라니까?”
남편은 사람들의 발자욱을 담고 눈처럼 뭉쳐진 꽃잎뭉치를 찍느라 온 비를 다 맞고 있었다. 모자라도 쓰라고 해도 벚나무가지에서 우두둑 떨어지는 꽃잎과 비와 한 몸이 되었다. 꽃길따라 걸어가는 뒷모습을 찍었다. 어제도 엄마의 뒷모습을 찍으면서 맘이 슬펐다. 남편의 뒷모습은 나를 더 슬프게 했다. 왜 그럴까.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운치있고 멋있네 라며 치켜주었지만 난 여전히 슬펐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산다는 것은 분명 쉽지 않다. 난 그 쉽지 않은 일을 잘 하고 싶어서 늘 노력한다. 그런데 남편은 나처럼 의도적으로 노력하지 않는다. 타고난 품성으로 감정을 조절하는게 신기하다.
남편은 걱정이 될 만한 일을 두고도 늘 말한다.
“흐르는대로 살면되지 뭘 걱정하는가. 걱정을 앞당겨서 하는 것처럼 바보같은 이는 없네.”
도인하고 사는 건지, 내가 못살아 라며 쏘아부치는 내 눈에 미소를 던진다. 그러면 나는 신기하게도 시간을 벌게 된다. 성난 감정, 부질없는 감정을 녹일수 있는 시간을.
톡으로 노래 하나를 보내주며, 우리 각시 힘내라는 문자가 왔다. 조동진의 ‘제비꽃’
책방 입구 계단에 핀 자주색 제비꽃을 보여주었더니 이렇게 이쁜 것들이 여기있네 하며 좋아했다. 우리 각시에게 행운이 될 흰색 제비꽃을 찾아서 보여주겠다고 했다.
수업으로 바쁜 시간에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어슬렁거린다.
“당신 흰 제비꽃과 흰 민들레 볼랑가?”
바빠 죽겠는데 무슨 소리냐고 한마디 했다. 잽싸게 나가더니 종이컵에 담긴 꽃들이 다가온다.
“어? 어디서 났어요? 그냥 두지 뭐하러 뽑아요. 땅이 다르니 오래 못살잖아.”
“우리 각시 기분 좋으라고 가져왔지. 어제부터 갑자기 시력이 좋아지더니 오늘 이꽃들 보라고 그랬나? 당신이 화분에 옮겨서 책방에 놓고 보소.”
물리치료 받는다고 다시 병원에 들어간다. 나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았다. 뭐가 그리 이쁜 각시라고 꽃까지 바치고 돌아가는가.
이제는 내 차례인가보다. 남편의 양지바른 언덕이 되어줄 나를 만들어야겠다. 남편의 품성 그릇을 따라잡을 만큼 지혜롭지도 못하지만 무엇이든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 하나는 잘하지 않은가 말이다. 뒷모습을 담은 시 몇편을 찾아 읽고 그 중 한편을 다시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