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5.23 손택수 <아내의 이름은 천리향>
오늘은 고 노무현대통령 추도일. 벌써 13년이 되었네요. 그날의 청천벽력과 같은 놀람과 슬픔, 지금도 여전합니다. 어린 두 아이를 앞세워 봉하마을로의 행렬에 섰던 그때가 바로 어제 같습니다. 수많은 연설 중 좌익활동에 연루된 장인의 딸인 아내를 두고 “아내를 제가 버려야합니까? 그렇게 하면 대통령 자격이 있고 이 아내를 계속 사랑하면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까.”는 아직도 귀에 쟁쟁합니다. 오늘은 손택수시인의 <아내의 이름은 천리향>. 봄날의 산책 모니카
아내의 이름은 천리향 - 손택수
세상에 천리향이 있다는 것은
세상 모든 곳에 천리나 먼
거리가 있다는 거지
한 지붕 한 이불을 덮고 사는
아내와 나 사이에도
천리는 있어,
등을 돌리고 잠든 아내의
고단한 숨소리를 듣는 밤
방구석에 처박혀 핀 천리향아
네가 서러운 것은
진하디진한 향기만큼
아득한 거리를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지
얼마나 아득했으면
이토록 진한 향기를 가졌겠는가
향기가 천리를 간다는 것은
살을 부비면서도
건너갈 수 없는 거리가
어디나 있다는 거지
허나 네가 갸륵한 것은
연애 적부터 궁지에 몰리면 하던 버릇
내 숱한 거짓말에 짐짓 손가락을 걸며
겨울을 건너가는 아내 때문이지
등을 맞댄 천리 너머
꽃망울 터지는 소리를 엿듣는 밤
너 서럽고 갸륵한 천리향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