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편지36

2022.5.23 손택수 <아내의 이름은 천리향>

by 박모니카

오늘은 고 노무현대통령 추도일. 벌써 13년이 되었네요. 그날의 청천벽력과 같은 놀람과 슬픔, 지금도 여전합니다. 어린 두 아이를 앞세워 봉하마을로의 행렬에 섰던 그때가 바로 어제 같습니다. 수많은 연설 중 좌익활동에 연루된 장인의 딸인 아내를 두고 “아내를 제가 버려야합니까? 그렇게 하면 대통령 자격이 있고 이 아내를 계속 사랑하면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까.”는 아직도 귀에 쟁쟁합니다. 오늘은 손택수시인의 <아내의 이름은 천리향>. 봄날의 산책 모니카


아내의 이름은 천리향 - 손택수

세상에 천리향이 있다는 것은

세상 모든 곳에 천리나 먼

거리가 있다는 거지

한 지붕 한 이불을 덮고 사는

아내와 나 사이에도

천리는 있어,

등을 돌리고 잠든 아내의

고단한 숨소리를 듣는 밤

방구석에 처박혀 핀 천리향아

네가 서러운 것은

진하디진한 향기만큼

아득한 거리를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지

얼마나 아득했으면

이토록 진한 향기를 가졌겠는가

향기가 천리를 간다는 것은

살을 부비면서도

건너갈 수 없는 거리가

어디나 있다는 거지

허나 네가 갸륵한 것은

연애 적부터 궁지에 몰리면 하던 버릇

내 숱한 거짓말에 짐짓 손가락을 걸며

겨울을 건너가는 아내 때문이지

등을 맞댄 천리 너머

꽃망울 터지는 소리를 엿듣는 밤

너 서럽고 갸륵한 천리향아

노무현서거13주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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