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편지79

2022.7.5 서정윤<홀로서기>

by 박모니카

일본의 식물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이나가키 히데히로’의 <패자의 생명사>독후 서평하나를 썼지요. 이분법적 현대에서 ‘패자’가 어떻게 지구생명역사의 승자가 될 수 있었을까 궁금했어요. 약육강식에서 물러나는 약자들이 겪어낸 역경이 또 다른 세상으로의 진화로 창조되었다는 진실이 흥미로웠어요. 결국 우리의 문명은 수십억년간 쌓여진 역경의 퇴적암이죠. 우리 삶도 그럴거예요. 이 역경이 없다면 우리의 고유한 존재성을 나타내는 무늬가 없을거예요. 오늘은 서정윤 시인의 <홀로서기>를 읽습니다. 봄날의산책 모니카


홀로서기 / 서정윤


1.

둘이 만나 서는 게 아니라

홀로 선 둘이가 만나는 것이다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가슴이 아프면 아픈 채로,

바람이 불면

고개를 높이 쳐들어서, 날리는

아득한 미소.

어디엔가 있을

나의 한 쪽을 위해

헤매이던 숱한 방황의 날들.

태어나면서 이미

누군가가 정해졌었다면,

이제는 그를

만나고 싶다.


2.

나의 전부를 벗고

알몸뚱이로 모두를 대하고 싶다.

그것조차

가면이라고 말할지라도

변명하지 않으며 살고 싶다.

말로써 행동을 만들지 않고

행동으로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혼자가 되리라.

그 끝없는 고독과의 투쟁을

혼자의 힘으로 견디어야 한다.

부리에,

발톱에 피가 맺혀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숱한 불면의 밤을 새우며

「홀로 서기」를 익혀야 한다.


3.

나를 지켜야 한다

누군가가 나를 차지하려 해도

그 허전한 아픔을

또다시 느끼지 않기 위해

마음의 창을 꼭꼭 닫아야 한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얻은 이 절실한 결론을

「이번에는」

「이번에는」 하며 여겨보아도

결국 인간에게서는

더 이상 바랄 수 없음을 깨달은 날

나는 비록 공허한 웃음이지만

웃음을 웃을 수 있었다.

아무도 대신 죽어주지 않는

나의 삶,

좀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4.

누군가가

나를 향해 다가오면

나는 「움찔」 뒤로 물러난다.

그러다가 그가

나에게서 떨어져 갈 땐

발을 동동 구르며 손짓을 한다.

만날 때 이미

헤어질 준비를 하는 우리는,

아주 냉담하게 돌아설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아파오는 가슴 한 구석의 나무는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떠나는 사람은 잡을 수 없고

떠날 사람을 잡는 것만큼

자신이 초라할 수 없다.

떠날 사람은 보내어야 한다.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일지라도.

5.

죽음이

인생의 종말이 아니기에

이 추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살아 있다.

나의 얼굴에 대해

내가

책임질 수 있을 때까지

홀로임을 느껴야 한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홀로 서고 있을, 그 누군가를 위해

촛불을 들자.

허전한 가슴을 메울 수는 없지만

「이것이다」 하며

살아가고 싶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사랑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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